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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 앞에서 웃는데 사진 원본 6억원에 팔린 ‘미친 사연’

불난 집 앞에서 웃는데 사진 원본 6억원에 팔린 ‘미친 사연’

임병선 기자
입력 2021-05-01 09:46
업데이트 2021-05-0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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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불 난 이웃집을 구경하다 기묘한 미소를 흘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네 살 소녀 조이 로스. 사람들은 이 사진에 열광해 다양한 밈(meme)에 활용했다. 데이브 로스 제공
지난 2005년 불 난 이웃집을 구경하다 기묘한 미소를 흘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네 살 소녀 조이 로스. 사람들은 이 사진에 열광해 다양한 밈(meme)에 활용했다.
데이브 로스 제공
불 난 이웃집을 배경으로 미소짓고 있는 소녀를 담은 사진 원본이 찍힌 지 16년 만에 6억원에 팔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진 원본이 갖고 있는 대체 불가성을 이제야 제대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2005년 1월의 어느 토요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미베인 시의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대원들이 훈련을 위해 일부러 불을 낸 것이었다. 이웃에 살던 네 살 소녀 조이 로스는 가족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와 이 모습을 지켜봤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조이의 아버지 데이브가 카메라를 보라고 했고, 조이는 아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르는 사람은 괴이한 미소라고 느낄 수도 있는 사진이다. 조이의 사진은 ‘재앙의 소녀’란 제목이 붙으며 인터넷 ‘밈’(Meme)으로 자리 잡았다. 밈은 인터넷 놀이문화의 하나로 다양한 상황에 맞게 합성되고 변형되는 사진이나 그림, 음악, 문구 등을 의미한다. 한국의 ‘짤’(짤방) 문화와 비슷한 맥락이다.

조이의 사진은 각종 사고 현장을 차용한 유머 소재로 쓰였다. 예를 들어 이 사진에 “시끄러운 음악을 듣던 이웃.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는 문구를 넣어 마치 이웃집에 자신이 불을 지른 것처럼 표현하거나, 조이의 얼굴에는 ‘신’(God)을, 불이 난 집에는 ‘2020년’이라는 문구를 합성해 신이 코로나19로 2020년을 없애버린 것처럼 표현하는 식이다. 조이는 일간 뉴욕 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내 사진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이용하는지 보는 게 즐거웠다”며 “매번 새로운 끔찍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내 사진이 합성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몇 번 웃었다”고 했다.

NYT는 지난 29일(현지시간) 16년 전 찍힌 이 사진의 원본이 온라인 경매에서 180이더(암호화폐 이더리움의 단위)에 낙찰됐다고 보도했다. 1이더는 이날 한국 암호화폐 거래 사이트 코인원 시세 기준 약 325만원이어서 180이더는 약 5억 8000만원이 된다. NYT에 따르면 이제 스물한 살이 된 조이가 이 원본을 매물로 내놓았다.
이제 스물한 살의 대학생으로 자란 조이의 모습. 대체불가능 토큰(NFT) 기술이 적용되는 덕에 네 살 적의 사진을 경매에 내놓았는데 6억원에 팔려 학자금 대출도 갚고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게 됐다. 조이 로스 제공
이제 스물한 살의 대학생으로 자란 조이의 모습. 대체불가능 토큰(NFT) 기술이 적용되는 덕에 네 살 적의 사진을 경매에 내놓았는데 6억원에 팔려 학자금 대출도 갚고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게 됐다.
조이 로스 제공
인터넷 밈 문화로 떠돌던 사진의 원본이 6억원가량의 가치를 인정받은 배경에는 블록체인과 여기에서 파생된 대체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 기술이 있다. NFT는 그림이나 영상 따위에 붙이는 일종의 꼬리표다. 기존의 디지털 복제 방지 기술과 달리 블록체인 기술로 이뤄져 복제나 변형이 불가능한 고유성을 갖게 된다. 사진이나 그림 등 디지털 요소에 희소성이 부여되는 것은 NFT 덕분인 셈이다. 특히, NFT 꼬리표가 붙은 디지털 요소는 소유자와 거래 이력까지 기록돼 최근 새로운 블록체인 기술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이도 NFT의 대체 불가능성에 주목했다. 16년 전의 원본 사진을 경매에 올린 이유에 대해 조이는 “한 번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NFT를 통해 원본 사진을 증명하는 일이 밈으로 자리 잡은 자신의 과거 사진을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디지털 요소가 엄청난 가격에 팔린 것은 조이의 사진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엔 소셜미디어 트위터의 최고경영자(CEO) 잭 도시가 날린 최초의 트윗이 290만 달러(약 32억 7000만원)에 판매돼 많은 눈길을 끌었다. 조이는 이번에 사진 원본을 경매해 얻은 수익을 대학 학자금 상환과 자선단체 기부에 쓰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사람들이 밈을 즐겨 인기를 끈 것이 하나이고, 인터넷이 내 사진을 간직하고 인기를 끌고 그럴 듯하게 만든 것도 사실인데 내겐 너무 미친 일이다. 이 모든 경험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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