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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군사저술가 “맥아더 장군, 역사적 재평가할 시점”

美군사저술가 “맥아더 장군, 역사적 재평가할 시점”

입력 2014-05-27 00:00
업데이트 2014-05-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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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서 최악의 사령관 꼽히고 TV드라마서도 비난 장면””한국전쟁 잘못 다뤘으나 2차대전 때 현대전 개척한 전쟁영웅”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해 한국민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대해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현대전의 영웅이면서도 독특한 개성과 부분적인 실수들로 인해 후세에 의해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맥아더 장군의 비화를 다룬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는 저서를 쓴 미국의 군사분야 저술가인 마크 페리는 26일(현지시간) 정치전문지인 ‘폴리티코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이제는 맥아더 장군을 재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페리는 “최근 비공식적으로 실시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맥아더 장군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령관으로 기록됐고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으로 변신해 ‘배신자’라는 오명을 들은 베네딕트 아널드 장군이 그 다음이었다”며 “특히 논픽션 TV 미니시리즈인 ‘펠렐리우섬의 해병대’에서는 병사들이 맥아더 장군을 비난하는 장면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리는 특히 “비평가들은 맥아더 장군이 불복종적이고 거만한데다 반대파를 가혹하게 다뤘고 한국전쟁에서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한국전쟁 초기의 패배를 만회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을 과소평가하고 확전을 억제하라는 워싱턴의 지시를 의도적으로 어기면서 한국전쟁에서 지속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며 “결국 해리 투르먼 대통령과 한반도 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던 끝에 사령관직에서 해임됐다”고 덧붙였다.

또 맥아더 장군이 1932년 미국 대공황 당시 생활고를 호소하며 보너스 인상을 요구하던 1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을 강경진압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1942년 필리핀 코레히도르섬 사수에 결국 실패하고 호주로 탈출해 ‘더그아웃 더그’(수세국면에 몰려 방공호에 숨어있다는 뜻)라는 오명을 썼으며 ▲1944년 10월 필리핀 레이터만 상륙작전 때에는 사진촬영을 의식해 ‘예행연습’을 했다는 논란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페리는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맥아더 장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완벽에 가까운 사령관 업무를 수행했고, 현대전을 개척했으며, 가장 훌륭한 사령관들을 길러낸 인물”이라며 “몇가지 실수로 인해 그를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맥아더 장군은 가장 혁신적인 사령관이었다”며 “신속하고 가벼우며 이동이 손쉬운 수륙양용 작전을 개발하고 공군의 광범위한 작전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바로 맥아더 장군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면서 “1942년 태평양 뉴브리튼섬의 일본군 기지가 있는 라바울을 고립화하는 작전(일명 카트휠 작전)은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념비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맥아더 장군은 당시 재래식 전략을 버리고 전략적 요충지를 겨냥해 공격을 집중하는 전략을 펴 라바울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했고 이를 토대로 남태평양 전역에서 공세적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맥아더 장군은 해군과 갈등을 빚기는 했으나 육·해·공군의 합동작전을 매우 중시했다”며 “전쟁의 승리가 해군 순양함과 구축함 수륙양용전 장비, 육군항공대 전투기와 폭격기, 수송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일부 역사가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의 정치적 동기를 의심한 나머지 1930년대 말 맥아더 장군이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필리핀 근무를 명령했고, 공화당의 압력에 못이겨 맥아더 장군을 코레히도르섬에서 구출해줬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신뢰하는 관계였다”며 “대공황 당시 참전자들의 시위를 강경진압했던 맥아더 장군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했고 뉴딜 프로그램의 일환인 시민보호청년단을 조직하는 임무를 맡겼다”고 강조했다.

또 “루스벨트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필리핀에 보낸 것은 워싱턴에 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게 아니라 일본과의 전쟁을 예상했기 때문”이라며 “아시아와 일본을 제대로 알고 전쟁을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이 맥아더 장군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맥아더 장군은 스스로의 성공에 의한 희생양이었다”며 “만일 1945년 일본의 항복만을 받고 곧바로 전역했다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령관이자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위대한 사령관으로 기억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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