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랠리는 1시간 남짓…개표 속보에 패닉 시작, 롤러코스터 장세
영국이 예상 밖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24일 글로벌 금융시장은 사상 최악의 롤러코스터를 탔다.이날 국민투표 종료 직후 잔류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1시간 남짓 안도 랠리를 펼치던 금융시장은 지역별 개표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탈퇴 쪽으로 기울자 공포에 질리면서 폭락을 거듭했다.
유로 값과 파운드 값, 주가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자 투자자들은 뒤늦게 ‘팔자’에 나섰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거래는 얼어붙었고 트레이더들은 공포에 질려 마비증세를 호소했다.
◇ 파운드화 10% 폭락해 1992년 ‘검은 수요일’의 2배…유로화도 하루 최대 낙폭
24일 영국의 국민투표 종료 이후 브렉시트가 결정되기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역대 최악의 기록이 속출했다.
런던, 뉴욕, 도쿄로 배턴터치를 하며 24시간 거래가 이뤄지는 외환시장이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투표 종료 직후만 하더라도 잔류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파운드당 1.5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이후 10% 넘게 폭락하면서 파운드당 1.33달러까지 떨어져 1985년 이후 31년 만에 최저치로 고꾸라졌다.
이날 파운드화 가치의 낙폭은 1992년 영국이 유럽국가 간 준고정환율제였던 환율조정메커니즘(ERM)에서 탈퇴했던 ‘검은 수요일’의 4.1%의 2배를 넘어서 하루 기준 사상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유로화 가치도 이날 하루 만에 4.3% 폭락해 1.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1999년 도입 이후 최악의 낙폭을 기록했다.
장 초반만 해도 상승하던 아시아 주식시장은 오후 들어 브렉시트가 확정되면서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장 초반 1% 넘게 상승했던 일본 닛케이지수는 오후 들어 장중 8% 넘게 추락했고, 토픽스지수도 8% 이상으로 낙폭을 확대했다. 닛케이지수가 8% 넘게 추락하면서 도쿄증권거래소는 닛케이지수 선물의 거래를 중지했다.
이날 닛케이지수의 장중 낙폭은 2011년 3월 북동부 대지진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홍콩의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이하 H지수)는 4%, 한국 코스피는 3% 넘게 떨어졌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와 엔화, 금 가격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1.52%로 22bp(1bp=0.01%) 하락했다. 국채금리가 하락하면 가격은 상승한다. 낙폭은 2011년 8월 이후 최대치다.
엔화 가치는 1998년 이후 최대폭인 6.3% 뛰어올라 2013년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100엔이 붕괴됐다.
엔화가치는 이날 파운드화에 비해서는 15% 폭등했다.
금 가격은 8.1% 뛰어 온스당 1,358.54달러를 기록하면서 2014년 3월 이후 최고로 치솟았다.
◇ 뒤늦게 ‘팔자’ 속출 속 트레이더들 살얼음판
영국의 국민투표 종료 이후 예상치 않게 브렉시트로 점점 기울면서 채권과 외환트레이더들은 컴퓨터 모니터와 텔레비전에서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트레이더들은 일제히 거액의 베팅을 삼가면서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거래를 하는 분위기였다. 너무 놀라 마비증세를 호소하며 무력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고객들의 팔자 주문이 뒤늦게 몰려들었지만, ‘사자’가 실종돼 유동성이 말라붙으면서 소액의 거래에도 가격이 급등락했다.
아야코 세라 미쓰이스미토모은행 투자전략가는 “사자 쪽에 거의 아무도 없는 거래량이 극도로 적은 시장에서 패닉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면서 “브렉시트가 우세해지면서 일말의 낙관주의도 증발했다”고 말했다.
이날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이 24시간 고객응대 데스크를 개설하면서 각 은행에는 뒤늦게 팔자 주문을 내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앞서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고객들에게 이날 일부 시장에서 유동성이 부족해질 수 있고, 특정 거래는 실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매슈 셔우드 퍼페츄얼 투자전략부문장은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치고 있다”면서 “위험 계산에서 심각한 착오가 있었고, 이제 다들 반대매매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쉬누 바라탄 미즈호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는 “모두들 지옥에서 탈출하고 있다”면서 “엔화, 미국 국채, 금을 사는 게 유일한 살 길”이라고 말했다.
앤드류 클라크 미라보드 아시아 트레이딩부문장은 “고객들이 너무 놀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사슴이 밤에 길을 건너다가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너무나 당황해서 찻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 있는 모습 같다”고 말했다.
삼성자산운용의 앨런 리처드슨 펀드매니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면서 “공포에 온몸이 마비돼 손발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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