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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왜 테러 빈발하나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왜 테러 빈발하나

입력 2014-05-01 00:00
업데이트 2014-05-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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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믿는 위구르족, 한족과 ‘뿌리깊은 갈등’

지난달 30일 8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우루무치(烏魯木齊) 기차역 폭탄테러가 발생한 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는 위구르족의 분리 독립운동으로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는 ‘중국의 화약고’로 불리는 지역이다.

18세기 위구르인의 독립운동을 청 왕조가 군대를 파견해 진압한 이후 반중(反中) 정서가 뿌리깊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에 있는 신장은 고대에 서역이라고 불리던 지역의 일부분으로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이슬람교가 신장 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경이다. 이들은 한 때 위구르 제국을 세우고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청나라 건륭제 때 중국에 편입된 이후 갈등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위구르족은 1944년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치 국가를 성립하기도 했으나 5년 만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병합된 뒤 1955년 신장위구르 자치구가 됐다.

2천200만 명의 신장위구르 인구 가운데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1천만여 명이 위구르족이다.

수니파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이들은 중국의 주류인 한족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과 문화, 언어 등을 유지해 왔다.

위구르인들의 분리 독립 요구가 거센 것도 한족의 대량 이주와 민족 동화정책, 경제적 장악 등이 배경이다.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억압된 사회 분위기가 위구르인의 불만과 분노를 사고 있다.

중국이 1980년대부터 한족 이주를 추진한 이후 한족이 전체 주민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민족 갈등은 유혈사태와 테러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2009년 7월 197명이 숨지고 1천700여명이 부상한 우루무치 유혈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8년에는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나흘 앞두고 위구르족 테러분자들이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스(喀什) 지구에서 중국 무장경찰을 향해 수류탄을 던져 16명이 사망했다.

최근 위구르인들의 ‘저항’은 신장위구르 지역을 벗어나 중국 전역을 무대로 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28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는 위구르인 일가족의 차량 돌진 테러로 5명이 사망했다. 29명이 숨지고 140여 명이 다친 지난 3월 1일 쿤밍 철도역 테러도 신장 분리 독립운동 세력이 계획적으로 일으킨 테러행위라고 중국 당국은 밝혔다.

중국은 지금까지 위구르인들의 저항에 대해 강경 일변도의 대응을 이어왔다.

지난달 27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취임 이후 처음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찾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연일 테러 강경 대응 메시지를 쏟아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족이 독립하면 55개 중국 소수민족 전체에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다 신장은 중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매장량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전략적 가치 측면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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