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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근기자 현지르포-막 오르는 ‘차르 푸틴’ 3막] 청년들이 전하는 러시아 현재와 미래

[유대근기자 현지르포-막 오르는 ‘차르 푸틴’ 3막] 청년들이 전하는 러시아 현재와 미래

입력 2012-03-01 00:00
업데이트 2012-03-0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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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된 대선 후보 푸틴뿐 다음엔 새로운 인물 기대”

“방법이야 어찌 됐든 푸틴 덕에 경제가 나아졌다. 검증된 후보가 푸틴밖에 없지 않은가.” 2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서북부 ‘1905년’역 인근의 한 사무실. 이 회사에 3년째 근무 중인 빅토리아(29·여)는 “대선 후보 중 누굴 지지하느냐.”라는 질문에 “기권하지 않는다면 푸틴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무실 동료 로만(32)과 알렉산드라(31·여)도 검증된 후보라는 점에서는 푸틴에 나은 점수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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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러시아 모스크바 고등경제대 1학년 학생 4명이 강의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재집권 이후 러시아 사회의 고민과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9일 러시아 모스크바 고등경제대 1학년 학생 4명이 강의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재집권 이후 러시아 사회의 고민과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방담을 나눈 30대 안팎의 남녀 직장인 3명과 러시아 고등경제대 신입생 4명 등 러시아 청년들은 높은 전세가와 고물가, 대학 등록금 문제와 낮은 취업률 등 우리나라 청년층과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푸틴의 능력’에 높은 점수를 줬지만 친구끼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푸틴의 풍자물을 돌려 보는 등 ‘최고 지도자’의 권위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인상을 풍겼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흔치 않았던 현상이다. 러시아 청년 7명이 전하는 고민과 러시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로만과 그 동료들은 매달 2500달러(약 280만원)가량의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러시아 근로자의 평균급여보다 높은 수치다. 이들은 “중산층 소득수준은 된다.”면서도 “집세로 1000달러 이상을 내고 나면 저축할 돈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시민 중 다수는 직장 때문에 이주해 온 외부인인데 최근 아파트 가격이 폭등해 내집 장만은 꿈도 못 꾼다. 신용대출을 받고 평생 조금씩 갚아가는 게 많은 시민들의 현실이라고 한다.

또 돈벌이를 위해 ‘투잡’(two-job)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장인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알렉산드라는 “전문성을 살려 통역이나 법률 자문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21년 전 붕괴한 옛소련의 기억이 남아 있을까. 로만은 “페레스트로이카(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조치) 이전에는 상점에 물건이 없어 20시간씩 줄섰던 기억 등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 회상했다. 이들 부모 가운데 “모든 것이 예측 가능했던 그때가 좋았다.”고 옛소련에 대한 향수를 품는 이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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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20여년간 옛소련 붕괴와 채무지불유예(디폴트) 선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러 차례 대혼란을 겪은 탓에 변화보다는 안정을 지향하는 인상이 짙었다. 경험 많은 푸틴에 유권자가 긍정적 신호를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큰 듯했다. 이들은 “푸틴 외의 후보들은 당선이 목표인지, 출마가 목표인지 모르겠다.”거나 “새로운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측근들이 중앙에 들어오면서 부패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대선은 사실상 경쟁구도가 아닌 푸틴에 대한 신임투표가 된 듯 보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후보가 없어 기권할 생각”이라는 로만의 답변에는 경쟁력 있는 야권 주자가 등장한다면 다음 대선에서는 새 인물이 바람을 탈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했다.

모스크바 동북부의 고등경제대 강의실에서 만난 4명의 학생들도 등록금 등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안겔리나(18), 콘스탄틴(19), 예카테리나(19), 니콜라이(19) 등 1학년 학생들은 “학교 등록금이 2만 7500루블(약 110만원) 정도인데 다른 학교는 등록금이 40만 루블 가까이 한다.”고 말했다. 등록금이 비싸다고 느끼면 시위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더 싼 학교에 가거나 장학금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러시아에서 5년 넘게 유학한 한 한국인은 “러시아 대학가에는 시위 문화가 없다. 특히,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사회주도계층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지도층에 반하는 시위를 이끌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부정총선 규탄 및 반(反) 푸틴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지만, 주변에는 참여한 친구들이 있다고 전했다. 참여 학생 중 자신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도 있었지만, 단순한 호기심에 참가했다는 친구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완연한 변화의 기운도 감지됐다. 10~20대 청년들은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브콘탁테’ 등을 통해 푸틴을 패러디한 사진을 돌려 본다고 했다. 또 모스크바 뒷골목에 들어가면 푸틴을 풍자하는 그래피티(벽그림)를 흔히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총리이자 대통령 후보자의 사진에 장난하는 것이 흔하지 않았다.”면서 “(푸틴 풍자물이 늘어난 것은) 아무래도 SNS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역시 푸틴을 진지하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SNS에서 놀이하는 과정을 통해 푸틴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dynamic@seoul.co.kr

2012-03-0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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