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하나로 6명 구조… 국적은 달라도 기적은 통했다

망치 하나로 6명 구조… 국적은 달라도 기적은 통했다

입력 2011-02-25 00:00
업데이트 2011-02-2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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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현장 속 시민 영웅들

강진으로 폐허가 된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기적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시민 영웅들은 살아온 방식도, 국적도 다른 낯선 이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건물 잔해 사이로 기꺼이 손을 내밀며 희망을 끌어올렸다.

5년 전 뉴질랜드로 건너온 영국 출신 건설근로자 칼 스톡턴(43)은 망치 한 자루만 들고 현장에서 6명의 생환을 도왔다.

그는 참사가 발생한 22일 낮 평소와 다름없이 남섬 랑기오라 시의 건설 현장에서 동료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때 인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톡턴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오토바이에 올라타 30분을 내달렸고 현장에 도착했다.

●“폐소공포증 있었지만 두려움 못느껴”

그는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비참했다.”면서 당시를 떠올렸다. 구조대원들조차 충격 속에 허둥지둥하던 터라 스톡턴은 망치를 집어들고 무너진 4층 건물의 2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 천장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쫓아 몇 시간을 파내려 가다 보니 4명의 매몰자를 찾았고 땅 위로 꺼내 올릴 수 있었다.

1차 구조작전을 마친 스톡턴은 숨 돌릴 틈도 없이 2차 구조를 시작했다. 잔해 사이에 뚫린 30㎝ 남짓한 구멍으로 몸을 간신히 쑤셔넣은 뒤 조난자를 찾아 6m를 기어들어갔다.

그는 영국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폐소공포증이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결국 몇 시간의 노력 끝에 기진맥진해 있는 두명의 시민을 더 찾아냈다. 이 가운데 한 여성은 “결혼을 하던 중 지진이 났다.”며 구조된 것에 감격스러워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스톡턴은 “아드레날린이 몸속에 뿜어져 나와 비행기의 자동운항모드를 작동시킨 것처럼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잔해 사이로 목소리만 들리면 미친 듯 망치질을 했고 땅을 파고 또 팠다.”면서 “내 힘으로 6명을 세상 밖으로 끌어올렸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며 무용담을 뽐냈다. 또 “내가 구출한 여성의 결혼식에 초대됐다.”며 기뻐했다.

●새는 가스냄새 맡고 더 큰 참사 막아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젊은 영웅의 활약도 빛났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패디 맥고완(26)은 지진이 나던 당시 크라이스트처지 중심부의 인터넷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바닥이 크게 울려 밖을 보니 할리우드 재난영화인 ‘인디펜던트 데이’의 한 장면처럼 땅이 움직이며 가라앉았다.”고 설명했다. 놀란 가슴을 간신히 추스른 뒤 거리로 나선 맥고완은 무너져내린 도시 곳곳을 누비며 구조 작업을 도왔다. 덕분에 건물 더미에 깔린 여성 한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그는 또 냄새를 통해 현장에 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려 더 큰 참사를 막았다. 당황한 시민들이 질서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의 임무였다.

맥고완은 “잔해 속에서 남성 한명도 끌어올렸지만 이미 의식이 없었다. 인공호흡을 했으나 숨졌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중동에서 민주화 도미노의 기폭제 역할을 해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지진현장에서도 제 몫을 해내고 있다. 뉴질랜드 대학생 사이에서 SNS를 통해 지진 피해자를 돕자는 운동이 확산되면서 자원봉사자 1만명이 현장에 몰렸기 때문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2011-02-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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