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근무 한인 7명, 필사의 탈출

리비아 근무 한인 7명, 필사의 탈출

입력 2011-02-24 00:00
업데이트 2011-02-2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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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벵가지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만 8∼9구를 봤어요.전쟁터도 이렇게까지 참혹하진 않을 겁니다.”

 이집트 청년 모하마드 하마드(23)는 연합뉴스 기자에게 자기 휴대전화에 담은 시신 영상을 보여주며 절규하듯 소리쳤다.

 시신 8∼9가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모습을 담은 그의 영상은 리비아에서 자행되고 있는 당국의 유혈 진압이 어느 지경까지 이르렀는지를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23일(이하 현지시각) 리비아와 이집트 경계선에 있는 살룸 국경통과소.

 수도 카이로에서 차로 10시간을 달려 도달한 단층 건물의 국경통과소는 생지옥과도 같았던 리비아를 떠나 이집트로 입국하려는 수만명의 인파가 한데 뒤엉켜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양손에 이불꾸러미,가전제품 등 짐보따리를 들고 국경통과소를 거쳐 허겁지겁 각자의 행선지로 향하는 이집트인들의 모습은 피난민의 행색 그대로였다.

 국경통과소 주변에는 이들을 태우려는 미니버스와 대형버스 수백대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고,때아닌 대목을 만난 버스 호객꾼들은 “알렉산드리아!”,“카이로!” 등 행선지를 외치며 손님을 끌어모으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버스 주차장 뒤로는 필사의 탈출을 하느라 녹초가 된 이들을 위해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가 마련한 대형 텐트 수십 채가 설치돼 있었다.

 간이 환전소에서는 리비아 화폐 가치를 지난달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밖에 쳐주지 않자 손님과 직원 간에 승강이도 끊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무사히 탈출했다는 안도감보다는 현실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을 봤다는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듯한 표정이었다.

 트리폴리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하와드 헤바(20)는 “트리폴리에서 꼬박 만 하루가 걸려 이곳에 도착했다”며 “오는 도중에도 폭탄이 곳곳에서 터져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다”고 괴로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남성도 “이곳에 오는 동안 괴한들을 만나 돈,휴대전화,가방을 모두 뺏겼다”며 “국경통과소까진 간신히 왔지만 집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국경통과소에는 한국 원건설 소속 직원 7명도 도착해 출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비아 동부 데르나 지역 건설현장에 머물던 이들은 리비아 현지인들이 현장에 들이닥쳐 공격하는 등 치안상황이 극도로 악화하자 탈출을 결심,현장에서 5시간 운전 끝에 이날 밤 국경통과소에 도착했다.

 한국 직원들은 그러나 여권을 소지하지 않아 현재 출국심사대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트리폴리 사무실에 보관해 둔 여권을 가져올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리비아 탈출은 다급한 상황이었다.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은 이들에 대한 여행증명서를 긴급 발급,24일 아침 일찍 이들이 출국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집트 대사관 윤명규 영사는 “먼저 도착한 한국 직원 7명 외에 2진으로 출발한 또 다른 직원 38명도 24일 아침까지 이곳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한국인 모두가 무사히 리비아를 떠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리비아는 지난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 원수가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피의 보복’을 천명한 뒤 더욱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리비아 시위 사태로 1천명이 숨졌다는 추정치는 신뢰할만한 정보라며 인명피해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살룸국경통과소(이집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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