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일상,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구두수선공 맥스(애덤 샌들러). 미국 뉴욕의 구시가지에서 작고 허름한 구두수선 가게를 4대째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하며 지내는 미국판 ‘미생’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으면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영화 ‘코블러’는 타인의 신발을 신고 그들의 생활을 경험하는 주인공을 통해 반복된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대리 만족을 선사하는 판타지 코미디다. 토머스 매카시 감독은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 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일견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한번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건드린 접근 방식이 돋보인다.

영화는 초반부터 마술처럼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어느 날 맥스는 쓰던 수선 기계가 고장 나자 창고에 버려져 있던 100년도 더 된 기계를 꺼낸다. 이 기계로 수선 작업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수선이 완료된 손님의 구두를 신어 본 맥스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신이 구두 주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것.

그날 이후 맥스의 변신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나이와 성별, 인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한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으로 변신했다가 빨간 하이힐을 신은 여성으로 변하기도 하고 중국인이 돼 차이나타운을 거닐며 태극권 수련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맥스가 매력적인 여자친구를 둔 훈남으로 변하는 장면이다. 그녀와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려는 결정적인 순간 신발을 벗으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이 두려워 눈물을 머금고 줄행랑치는 모습은 웃음을 안겨 준다. 물론 가슴 찡한 장면도 있다. 맥스는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싶다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기꺼이 아버지의 신발을 신는다.

그의 이런 능력은 여러 가지 사건과 얽히면서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그는 갱스터로 변해 범죄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뉴욕에서 일어난 재개발 붐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뻔한 노인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코미디로 흘러가던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일관성을 잃고 가족극, 범죄 스릴러, 사회고발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이면서 용두사미가 되는 듯한 모양새는 안타깝다. 특히 구두 한 켤레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더스틴 호프먼은 개연성이 떨어져 감동을 반감시킨다. 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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