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유기견들의 역습

‘반려견’, ‘반려묘’ 등의 이름으로 평생 인간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지내는 동물들이 있는가 하면,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동물들도 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각자 주어진 삶이 있을 터. 그러나 인간의 손에 길러지다가 하루아침에 내쫓긴 동물들의 운명은 처절하기만 하다. ‘화이트 갓’(White God)은 잡종견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유기견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들의 역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 기저에 내비치는 풍자와 비판이 섬뜩하리만치 날카롭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마음 둘 곳 없는 열세 살 소녀 ‘릴리’에게 ‘하겐’은 가장 좋은 친구이며 유일한 위안거리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 머무는 사이 잡종견 신고가 들어오자 고지식한 아버지는 하겐을 강제로 내다 버리고 만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릴리와 하겐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하겐은 인간에게 종속된 동물이 아니라 릴리와 동등한 주인공이자 유례없이 인상적인 캐릭터로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처음에는 주인과 애견이 재회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지만, 이들이 겪게 되는 일들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며 결말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확실한 것은 눈물겨운 신파조의 그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세련된 마지막 장면이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

먼저 하루빨리 하겐을 찾으려 동분서주하는 릴리는 이를 방해하는 아버지 및 음악 교사와의 갈등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제도와 기성세대의 불관용에 대항하기엔 그녀는 너무 어리고 가냘프다. 덩치가 큰 또래들까지 릴리를 이용하는 사건은 약자를 대하는 인간의 오만한 태도와 악한 본성을 돌아보게 한다. 이미 역사를 핏빛으로 물들인 바 있었던 순혈주의적 발상이 현대에 와서도 평범한 소녀의 삶을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하겐 역시 비슷한 맥락의 폭력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의 이야기는 모든 면에서 훨씬 충격적이다. 버려진 잡종견들을 포획하려는 경찰들, 유기견을 잡아 팔아넘기는 노숙자, 투견을 양성하는 업자들, 동물보호소 직원들까지 하겐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인간들의 양태는 하나같이 잔혹하다. 특히 하겐이 투견으로 길러지는 장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의 본성까지도 조종하며 군림하는 ‘화이트 갓’의 역겨움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이 때문에 하겐이 수백 마리의 개와 함께 감행하는 처절한 복수는 이 서사 안에서 나름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윤리적 판단은 그 다음 문제다.

누아르와 스릴러의 관습들이 직조된 후반 30분은 완벽하리만치 밀도 있게 연출돼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반복되는 이미지, 자유를 쟁취한 후 텅 빈 도로를 힘차게 질주하는 개들의 생명력과 역동성은 영화가 가진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명장면이다. 유기견들의 반란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착취의 문제를 고발하는 대담함이 돋보인다. 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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