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이란 다른 사람 창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가져다 제 것처럼 쓰는 행위다. 동서고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음험한 그림자처럼 예술의 이름 뒤에 흔히 따라붙는 단어다. 국무위원 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들은 제자 논문 표절 사실이 들통나 쩔쩔매고, 어떤 시인은 이름 짜한 문학상에서 표절 사실이 드러나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음악계에서도 잠잠할 만하면 표절 논란이 터져 나온다. 문제는 표절을 증명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영화 ‘빅 아이즈’
팀 버튼의 새 영화 ‘빅 아이즈’는 화가 마거릿 킨(88)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1950~1960년대 미국 미술계에서 눈 큰 아이 작품들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팀 버튼이 “어릴 적 할머니집에도, 치과에도, 어디에도 눈 큰 아이 그림이 있었다”며 예술적 영감의 한 배경이었음을 이야기할 정도였다.

딸을 데리고 홀로 살던 무명화가 마거릿 킨은 월터 킨을 만나 재혼했다. 남편 역시 무명 화가. 두 사람은 갤러리를 열어 킨의 그림뿐 아니라 포스터를 팔고, 그림엽서를 팔며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문제는 그림을 그린 사람은 마거릿 킨이지만 바깥에서는 월터 킨이 화가로 행세했다는 사실이다. 1986년 마거릿 킨이 월터 킨을 고소하면서 비로소 진실이 알려지게 됐다. 마거릿 킨(에이미 애덤스)의 답답하리만치 나약한 모습이며 수완 좋은 사기꾼 월터 킨(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는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낄낄대게 만들며 ‘표절의 법정’에 앉은 배심원인 관객들에게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짓게 한다.

팀 버튼은 킨의 ‘눈 큰 아이’ 그림의 표절을 주된 소재로 삼으면서도 표절에 대한 얘기에 머물지 않는다. 표절은 이미 윤리와 도덕 바깥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고, 사악한 가해자와 절대적인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월터 킨은 아내에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미술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 화가라야 한다고 설득하고, 아내는 찜찜해하면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부부는 역시나 큰 돈을 번다. 하지만 양심의 목소리와 작가로서 명예의 욕망을 외면할 수 없었던 마거릿 킨은 결국 진실을 세상에 밝힌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남편은 결국 무일푼으로 파산하고 만다. 악은 응징됐고, 진실은 승리했다. 그런데?

팀 버튼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묻는 듯하다. 월터 킨을 비웃고 비난하는 당신은 표절을 둘러싼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냐고, 악마와의 거래를 떨치지 못한 채 얻은 달콤함을 누린 당신도 표절의 공범이 아니었냐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가위손’ 등 무려 여덟 작품을 함께했던 자신의 페르소나인 조니 뎁이 나오지 않는 팀 버튼 영화다. 감독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판타지 가득한 작품 분위기와 달라진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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