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훌쩍 큰 해리포터 로맨틱 코미디도 어울려

‘왓 이프’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첫 로맨틱 코미디다. 작은 키, 평범한 얼굴의 그가 과연 관객들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낭만적인 로맨스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니얼의 풍부한 표정과 입담은 까칠하면서도 배려심과 순애보를 가진 ‘월레스’를 꽤나 매력적인 남성으로 구현해 냈다. 역시 전형적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깜찍하고 친근한 느낌이 좋은 배우, ‘조 카잔’(샨트리)과의 호흡도 일품이다. 무엇보다 1930년대 유행했던 스크루볼 코미디의 자장(磁場) 아래 있는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기발하고 재치 있는 대사들로 웃음을 유발시킨다. 속사포처럼 빠르게 넘어오는 상대방의 말을 탁구공 치듯 다시 받아 넘기면서 리듬감과 속도감을 유지하는 것이 ‘왓 이프’의 코미디 전략이다.


바람을 피운 여자 친구와 단칼에 헤어진 월레스는 파티에서 만난 샨트리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벤)가 있는 몸. 그래서 두 사람은 친구로 지내기로 하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월레스와 샨트리는 먼저, 로맨틱 코미디의 영원한 화두 “남자와 여자는 (친한) 친구로(만) 남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장르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는 이미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 바 있지만 우리의 깜찍한 주인공들은 용감하게도 우정과 사랑 사이에 금을 긋고 이를 넘어서는 행위는 범죄인 양 터부시한다. 여기에는 물론 샨트리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윤리적 문제가 동반된다. 외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월레스와 다른 남자에게 끌리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샨트리는 그렇게 자신들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평행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불륜과 치정이 문화 콘텐츠의 서사(敍事)를 장악하고 있는 마당에, ‘왓 이프’는 이처럼 마냥 순진하고 해맑은 매력을 발산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두 사람이 아담과 하와처럼 벌거벗고 수영을 즐기는 장면이 대변하듯 이 영화는 남녀에 관한 원초적 주제를 동화 속에서 해결하려 한다. 선을 넘지 않으려는 두 주인공의 노력, 그 소심하고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내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조금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왓 이프’ 또한 발칙한 면을 갖고 있다. 모든 로맨스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도 처음부터 월레스와 샨트리가 장애를 넘어 사랑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벤이 샨트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당연히 월레스와의 사랑을 정당화시키기 위함이다. 남녀의 우정이란 이성적 호감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이 언제든 사랑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가끔은 오래된 사랑도 대체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두 사람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이 새로운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래, ‘왓 이프’의 논리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동화를 동화로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건 순전히 나이 탓이니까. 13일 개봉. 15세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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