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담대한 실험이 돋보인다. 영화가 차용하는 소재는 크게 세 가지다. 각각 쇠와 불, 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현대중공업, 포스코, 그리고 고래다. 이 세 개의 소재와 이미지가 울산이라는 지역이 품고 있는 지역사적 의미와 정보통신기술이 대세인 속에서 철과 배가 갖는 산업사적 의미, 그리고 죽음과 이별이 품은 생명의 순환적 의미를 담아 하나의 고리 속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며 순환한다.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박 감독이 직접 맡은 내레이션이다. 떠나간 여자 ‘승희’에게 보내는 음성편지는 감각적인 바다와 조선 기계들 배경으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과 티베트의 명상 음악, 그리고 남극과 하와이에서 촬영한 고래의 목소리 사이사이로 읊조려진다.
“승희에게. 날 떠나며 말했지. 신을 찾고 싶다고. 우린 지금 믿을 것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혹은 “내가 그린 기계의 이미지들은 산업시대의 끝에 대한 이야기일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야기일까.”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고래를 찾아내며 출발한 영화는 한 사찰에서 열리는 천도제를 지나 울산이 만들어진 역사를 과거의 기록 화면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중반부터는 지루할 정도로 느릿하게 배 만드는 공정을 따라간다. 쇳가루를 녹여 철을 만들고, 컴퓨터 공정을 거쳐 거대한 배로 디자인되고, 그 철이 배를 움직이는 스크루 프로펠러가 되어가는 과정까지 공장의 여러 기계 구조물들이 벌이는 향연이 펼쳐진다. 노동자들은 기계 부속품처럼 비쳐지지만, 매끈하게 만들고 틈새 용접하는 노동 등은 직접 행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마치 망자의 평안을 기원하는 천도제의 승려처럼 정성껏 노동한다. 이 과정에서 적어도 2~3분쯤 될 법한 꽤 긴 정적까지 포함해서 말러의 교향곡과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묘하게 어울린다. 다소 불편하지만 충격적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넷팩상, 로마아시아영화제 최우수다큐상, 타이완국제다큐영화제 경쟁부문 작가시선상을 받는 등 수많은 국제영화제로부터 공식초청을 받았다. 오는 13일 개봉. 전체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