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미조’ 내용 문제 삼아 두 번 심의하고도 국내개봉 막혀

한 독립영화가 두 번의 심의 끝에 국내 개봉을 포기할 처지에 놓였다. 영화 ‘미조’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지적한 장면을 ‘블러 처리’(화면을 흐리게 처리하는 것)하고도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상태다. 국내에서는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제한상영가 판정은 ‘국내 개봉 불가’와 마찬가지다.


영화 ‘미조’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뒤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소녀가 아버지를 찾아 복수하는 내용을 담았다.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 아버지를 향한 복수의 과정에서 가족 파탄이라는 사회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청소년 관람 불가로 첫선을 보였다. 문제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미조’를 제한상영가 영화로 판정한 데서 시작된다. 배급사 마운틴픽쳐스에 따르면 영등위는 총 7가지 장면을 지적하며 “폭력성의 수위가 매우 높고 비윤리적인 설정이 사회윤리에 어긋나며 선정성, 폭력성, 모방위험 등의 요소가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지적받은 장면을 블러 처리해 재심의를 신청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영등위는 “부녀간의 성행위가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등 사회윤리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돼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손상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성행위 장면의 수위보다도 딸이 아버지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갖고 복수한다는 설정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다. 배급사는 “영화 속 부녀간 성행위 장면은 서로를 아버지와 딸로 인식한 장면이 아니며, 선정성이 아닌 인간 윤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배급사는 영등위에 불복 신청과 재심 요청을 하고 판정이 번복되지 않을 경우 국내 개봉을 포기하고 해외 개봉만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미조’는 오는 10월 일본 개봉을 앞두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영등위와 영화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조’는 영화 개봉 자체가 가로막혔다는 점에서 영화계의 반발이 특히 거세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영화 장면을 문제 삼아 제한상영가 판정을 하는 것도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지만 영화 전체의 내용을 문제 삼은 건 예술로서 영화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영등위의 일관성 없는 잣대도 도마에 올랐다. 최근 개봉한 문제작 ‘님포매니악 볼륨 1·2’는 수위 높은 노출과 성행위 장면을 블러 처리해 개봉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으로 제한상영가 자체에 대한 존폐 논쟁이 다시 번질 가능성이 크다. 2002년 제한상영가 판정 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한국영화는 ‘악마를 보았다’, ‘뫼비우스’ 등 총 13편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영화에 따라 문제 장면을 삭제하거나 블러 처리하면서 상영 기회를 얻기도 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제한상영가 등급 제도에 대해 재판관 9명 중 7명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에서 개정 법안을 입법하면서 유지됐다. 법적 판단이나 사회 통념과도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제한상영가 판정이 나올 때마다 제한상영관 도입, 다양한 영화를 만날 권리 침해 등 문제가 불거졌다. 고질적이라고 할 만하다. ‘미조’를 계기로 시대 변화와 관객 선택권을 직시하고 변화를 모색할 때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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