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이’ 리뷰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는 인간과 가족,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경이로운 역작이다. ‘지구를 지켜라’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장준환 감독은 부계 사회의 은유를 통해 우리 안의 괴물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돋보이지만 상업 영화의 장르적 재미도 잃지 않는다.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화이(여진구)는 어린 시절 납치돼 ‘낮도깨비’라 불리는 범죄자 집단의 손에서 길러진다. 석태(김윤석)를 비롯한 다섯 명의 아버지들은 사격과 운전 등 각종 범죄 기술을 가르치며 화이를 살인 병기에 가까운 아이로 성장시킨다. 과거를 알지 못한 채 자란 화이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낮도깨비가 실은 원수이며 자신이 우발적으로 이들의 악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명석한 형사 정민(김영민)이 낮도깨비를 쫓고 부패한 경찰 창호(박용우)는 이들을 비호하는 가운데 진실을 마주한 화이는 아버지라 불러 왔던 이들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선택권을 빼앗긴 화이가 자신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이’라는 이름이 연상시키는 것처럼 화이는 끊임없이 ‘왜’(why)라는 의문을 품는다. 복수심에 불타는 화이는 “왜 날 키웠느냐”고 묻지만 석태는 “아빠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대답할 뿐 좀처럼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화이는 자신을 키워낸 사회의 실체를 깨닫고 바깥으로 탈주하려 하면서도 손쉽게 복수를 단행하지 못한다. 석태는 “나를 죽이면 너는 혼자가 된다”고 화이를 다그친다. ‘설국열차’ 바깥의 냉혹한 설원으로 나아가는 것이 고독한 결단을 요구하듯 주어진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상실과 희생을 요구한다. 석태는 괴물의 환영을 보는 화이에게 “괴물이 되어야 괴물이 사라진다”며 익숙한 사회 안에 머물라고 유혹한다. 복수의 에너지를 분출하던 화이가 석태의 말에 따라 실존의 결정을 망설이고 유예할 때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화이목’이라는 가상의 나무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감독은 “식물에서 기인한 뿌리로 만들어진 괴물이라는 의미가 ‘화이’라는 이름에 얽히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열매 맺는 존재라기보다 가족이라는 사회와 구조의 영향력 아래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언뜻 스쳐 가는 화이의 원래 이름 ‘근영’은 뿌리(根)가 없다(零)는 점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은 뿌리의 빈자리에 관객이 오랫동안 곱씹게 될 여러 질문을 심어 놓는다.

여진구와 김윤석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연기는 감독의 통찰력만큼 빛난다. 낮도깨비의 일원인 조진웅과 장현성, 김성균, 박해준은 물론이고 작지만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하는 문성근과 이경영, 박용우도 극의 무게를 확실히 잡아준다. 특히 연극 무대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김영민의 재치 있는 연기는 영화에 인상 깊은 활력을 불어넣는다. 엔딩 크레디트 뒤에 추가 영상이 있다. 126분. 9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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