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암살자들’의 화이트 감독

“유무죄 모르는 채 진실 따라가
정치보다 두 여성의 삶 주목을
김정은, 이 영화 알고 있을 것
가장 두렵고 힘든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 ‘암살자들’을 만든 라이언 화이트 감독이 지난 28일 화상 인터뷰에서 2017년 벌어진 ‘김정남(가운데 원) 암살 사건’을 다룬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에 용의자가 된 시티 아이샤(왼쪽 원)와 도안티흐엉(오른쪽 원)은 “거대한 장기판의 말이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br>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서울신문 DB
다큐멘터리 ‘암살자들’을 만든 라이언 화이트 감독이 지난 28일 화상 인터뷰에서 2017년 벌어진 ‘김정남(가운데 원) 암살 사건’을 다룬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에 용의자가 된 시티 아이샤(왼쪽 원)와 도안티흐엉(오른쪽 원)은 “거대한 장기판의 말이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서울신문 DB
“처음부터 두 사람의 무죄를 확신하지는 않았다. 계속 따라가다 보니 두 여성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믿게 됐다. 그들은 거대한 장기판의 말이었다.”
김정남<br>AFP 연합뉴스
김정남
AFP 연합뉴스
김정남 암살 사건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암살자들’의 라이언 화이트 감독은 지난 28일 시사회 직후 열린 화상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얼굴에 맹독 화학물질인 VX신경작용제를 발라 숨지게 한 두 여성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 베트남 국적 도안티흐엉은 붙잡힌 뒤 “몰래카메라 촬영을 하는 줄 알았다”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살인 혐의로 교수형에 내몰렸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 공개되고서 호평을 받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로 인정하지 않아 극장 개봉이 불확실했다. 그러나 재심을 거쳐 다음달 12일 개봉한다.
시티 아이샤(왼쪽)와 도안티흐엉(오른쪽)<br>서울신문 DB
시티 아이샤(왼쪽)와 도안티흐엉(오른쪽)
서울신문 DB
화이트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기 전 두 여성이 무죄인지 유죄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다큐멘터리로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이 여성들이 도대체 누구인지부터 시작했다. 이들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암살에 관여하게 됐는지를 주목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화이트 감독은 시티와 도안의 변호사와 친구, 가족을 만났다. 1000시간에 이르는 공항 폐쇄회로(CC)TV를 입수하고 재판 녹취록 등 방대한 정보들을 분석하는 작업만 2년이 걸렸다. 이를 종합한 결과, 두 여성은 그저 북한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정황이 분명한데도, 말레이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두 사람을 범인으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덮고 싶어 했다. 교수형이 거의 확실한 시점, 인도네시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시티는 바로 석방됐고, 도안 역시 베트남 정부 노력으로 뒤늦게 석방된다. 화이트 감독은 “영화 촬영 도중 시티의 갑작스러운 석방 소식이 가장 놀라웠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이런 모든 과정을 포함해 시티와 도안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내용도 담겼다.

화이트 감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영화를 보길 바라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에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일을 벌인 데는 모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암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를 공개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시티와 도안의 출연을 설득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작품을 만들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북한 소행으로 알려진) 소니 해킹 사건도 있었기 때문에 FBI에 컨설팅도 받았다”고 밝힌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가장 두렵고 힘든 순간을 겪었다. 다음 작품은 조금 가벼운 작품을 찍고 싶다”고 털어놨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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