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었던 승부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8일 tvN ‘더 지니어스2-룰 브레이커’에서 탈락한 홍진호(32)는 이 프로그램을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돌이켰다. 스타크래프트 선수에서 은퇴한 뒤 끄집어낼 일이 없었던 투지를 되살릴 수 있었던 기회였다는 것이다.

홍진호<br>스타엠코리아 제공
홍진호는 ‘더 지니어스’가 탄탄한 마니아층을 끌어들이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다양한 직종의 출연진이 두뇌싸움과 동맹의 전략을 동원해 벌이는 서바이벌게임에서 그는 프로게이머 출신다운 발군의 기지를 뽐냈다. 다른 출연진과의 합종연횡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게임의 판을 이해하는 판단력과 승부사 기질로 난관을 뚫어가며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지난해 방송된 시즌1에서 우승을 거머쥐자 시즌2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지난 24일 만난 그는 ‘더 지니어스’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로 판단력이 중요한 게임의 틀을 꼽았다. “저는 연습을 많이 하기보다 상대의 성향 같은 자료를 토대로 전략을 짜고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에요. 매번 촬영할 때마다 순간순간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이 저와 맞아떨어졌습니다.” 선수 특유의 승부욕도 한몫했다. “은퇴 후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다 섭외를 받고는 ‘무조건 우승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방송인들은 즐거움을 중시했는데 저는 이기려고 달려들었죠.”(웃음)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그의 면모는 프로게이머 시절 그대로였다. 2000년 데뷔한 그는 임요환, 이윤열 등과 함께 스타리그의 초창기를 열었다. 집요하게 휘몰아치는 게임 스타일과 ‘저그’라는 종족의 본질을 꿰뚫고 활용한 재능으로 ‘폭풍저그’라고 불렸다. 단 한 번의 우승 없이 준우승만 여러 차례였지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아름다운 2인자’로 회자되며 ‘e스포츠계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19살 때부터 프로게이머의 길만 걸어온 그에게 ‘더 지니어스’는 새로운 배움의 장이었다. “e스포츠는 개인전이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해 왔어요. 하지만 프로그램에서는 타인을 설득하는 능력과 처세술도 중요했죠. 다른 출연자들을 보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느꼈습니다.” 출연자들의 ‘꼼수’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인 데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방송을 하면서 화가 날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게임의 일부라 여기고 촬영이 끝나면 다 털어냈죠.”

그는 최근 tvN 토크쇼 ‘김지윤의 달콤한 19’와 ‘공유TV 좋아요’, SBS 라디오 ‘케이윌의 영스트리트’에 고정 출연하며 방송가에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방송인으로 거듭난다기보다는 ‘뭐든 부딪쳐 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 ‘더 지니어스’ 때문에 자신에게 정갈한 신사나 똑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실 난 약점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그는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많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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