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라덴 추적 작전’ 10년, 그 성공 뒤에 남은 그림자

9·11테러가 일어나고 2년 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마야는 파키스탄으로 파견된다. 그의 주 임무는, 9·11을 주도한 무장 조직 알카에다 지도자로 알려진 오사마 빈라덴을 찾아내는 것이다. 미국의 집요한 추적 노력을 비웃듯 빈라덴의 행방은 묘연하다. 소재가 파악되기는커녕 생존 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만 이어진다. 현장 요원 대부분이 지쳐 갈 즈음, 마야는 빈라덴의 측근을 뒤쫓다 은신처를 찾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확실한 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작전 명령을 내리지 못하자, 그의 집념은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다.

‘허트 로커’로 미국 아카데미상을 휩쓴 캐스린 비글로는 다시 한번 중동의 화염 속으로 뛰어든다. 미국이 이슬람 국가 혹은 조직과 벌이는 전쟁만큼 중요한 소재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제로 다크 서티’는 다큐멘터리에 버금가는 사실적인 접근으로 10년 연대기를 쓴다. 이러한 자세는 미국과 이슬람 세계의 대결을 탁월한 시각으로 바라본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영향을 받았다. 시간 순서에 따라 소제목을 붙여 가며 사건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한 ‘제로 다크 서티’는 비밀에 숨겨진 작전에 관한 일급 보고서로도 모자람이 없다. 비글로는 영리하게도 보고서를 작성할 뿐 본심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사실을 보여준 다음 진실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기로 한다.

‘제로 다크 서티’는 마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등장 이후 모든 사건에 개입해 진행 과정을 목격하는 그는 보기 드물게 진정한 주인공이다. CIA에서 12년 동안 재직한 그는 테러 조직의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바친다. 의심과 회의에 빠진 주변 요원들과 달리, 그는 주어진 임무에 대해 개인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즉, 그의 태도는 영화의 그것과 닮았다.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의미를 따지기보다 임무를 완수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는다.

마야는 배치되자마자 고문 현장에 투입된다. 혹독한 고문 앞에서 눈을 돌린 그는 곧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되찾는다. 고문에 지친 포로가 도움을 애원할 때, 냉정한 목소리로 ‘아는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요구한다. 진실 대신 사실만을 캐는 자세 탓에 임무는 자연스레 개인적인 집착으로 변질된다. 제거 작전에 투입되는 특수부대원에게 그가 ‘나를 위해 그를 제거해 달라’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마야는 미국이 9·11 이후 버리지 못한 집착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3000여명이 죽었고, 미국은 21세기의 첫 10년을 복수의 심정으로 보내야 했다.

9·11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전하는 녹음으로 시작되는 ‘제로 다크 서티’는 마야의 공허한 표정으로 끝난다. 홀로 비행기에 탑승한 그에게 조종사는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의 의미가 영화의 주제다. 빈라렌 제거 작전의 명칭은 ‘제로니모’였다. 제로니모는 백인에게 끝까지 저항한 마지막 아파치 전사의 이름이다. 21세기의 제로니모인 빈라덴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으나 미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또 다른 적의 이름을 가공해낼 것이다.

유령과 다름없는 적과의 싸움. 비글로가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제로 다크 서티(편집자 주: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간을 지칭한 군사 용어)에서 발견한 진실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7일 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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