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시도·사기 등..”대중 영향력 감안해야”

TV를 보면 자극적인 경험담 고백이 넘쳐난다.

거액을 사기당하거나 남모를 질병을 앓거나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경우까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사자는 어렵게 자신의 아픈 경험을 털어놓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넘쳐날수록 대중이 사안의 심각성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이특이 김연아와 일촌 에피소드를 털어놓고 있다. <br>SBS ‘강심장’ 방송 캡처


◇입담 대결 도구가 된 자기 고백 = 경험담 고백의 단골 장소는 토크쇼다. 특히 SBS ‘강심장’이나 ‘자기야’처럼 입담 대결의 형식을 띤 집단 토크쇼가 주무대가 된다.

’강심장’에서 자살 시도 경험을 털어놓은 연예인들은 양동근, 전혜빈, 박지윤, 선예 등 한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자기야’는 공개적인 험담의 장소가 되기 일쑤다. 출연자들은 시댁과 남편, 아내에 대한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배우 전원주는 작년 9월 방송에서 ‘큰 며느리는 순한데 게을러터졌다’ ‘둘째는 여우 중에 상여우다’ 등 며느리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발언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일자 다음 달 다른 지상파 방송에 직접 큰 며느리가 출연해 오해가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KBS ‘승승장구’와 SBS ‘힐링캠프’ 등 1인 토크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수 윤복희는 작년 11월 ‘승승장구’에서 낙태 경험을 털어놓았고, 그룹 부활의 김태원과 김정운 교수 역시 지난해 ‘힐링캠프’에서 자살 충동 경험을 고백했다.

지상파 방송을 벗어나면 충격적인 경험담의 빈도와 강도는 더 늘어난다.

작년 11월 종합편성채널 MBN의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방송인 이혁재는 눈덩이처럼 늘어난 빚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을 밝혔고, 방송인 김준희 역시 지난달 채널A의 ‘웰컴 투 돈월드’에서 사업 실패로 자살까지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대중의 관심 끌려는 의도 무시 못해 = 극단적인 경험담의 배경에는 화제 몰이를 하려는 출연자나 제작진의 의도가 작용한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다수의 토크쇼를 연출한 한 예능 PD는 “연예인들이 작품이나 개인 홍보를 위해 토크쇼에 출연해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출연자나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정적인 내용이 부각되는 경우도 많다.

한 방송 작가는 “토크쇼가 출연자의 삶을 다루다 보니 굴곡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자살 시도나 사업 실패 같은 ‘강한’ 이야기에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더 크게 반응한다”라며 “시청자의 반응에 제작진이나 출연자가 당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 홍보 과정에서 출연진의 경험담을 자극적으로 포장하려다 오해를 산 경우도 있다.

채널A의 ‘웰컴 투 돈월드’는 지난달 초 개그우먼 조혜련이 예능 프로그램 ‘여걸식스’ 출연 당시 ‘여걸식스’ 멤버의 추천으로 주식에 투자했다 실패해 그 멤버의 뺨을 때렸다고 사전 홍보자료를 배포했다 비난이 일자 ‘사실이 아니라 조혜련이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부랴부랴 해명했다.

◇”대중의 감수성 무뎌지게 할 수도” = 문제는 이러한 경험담이 대중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대 주은우 사회학과 교수는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통로로 작용하는데 극단적인 경험담이 TV에 넘쳐나면 시청자들이 그것을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자꾸 접하다 보면 경험의 감수성이 무뎌질 수 있다”라며 “시청자의 상상력을 안 좋은 방향으로 자극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배우 차인표가 작년 3월 ‘힐링캠프’에서 유명인들의 자살 시도 경험담에 일침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당시 차인표는 “유명인들이 TV에 나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어떻게 하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면 절대 안 된다”며 “힘들게 투병 중인 아이들과 아이의 부모들이 TV나 뉴스에서 연예인들과 관련된 그런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희망이 없어지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고(故) 최진실의 전 남편이자 전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이 지난 6일 자살한 후 부산에서는 하룻밤 새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유명 연예인 자살 후 2개월 동안 사회 전체 자살자 수가 일반적 추세보다 평균 600여 명 정도 늘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출연자들의 허심탄회한 고백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YMCA 한석현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희화화된 이야기와 진솔한 고백은 구별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한석현 팀장은 “힘든 시간의 극복 과정이 진솔하게 대중에게 전달되면 감동을 줄 수 있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라며 “제작진이 내부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편집을 통해 충분히 걸러낼 부분은 걸러낸다면 그런 경험담들을 꼭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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