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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한 분야/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한 분야/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14-05-08 00:00
업데이트 201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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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너무나 엄청난 세월호 사고 탓에 잊혀 버린 사건이 있다. 지난 3월 세종시에서 건축 중인 아파트가 철근 부족으로 부실시공 논란이 일었다. 하청업체가 하도급액 증액을 위해 원청업체를 상대로 고의로 부실 시공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신축 중인 아파트의 벽체 수평 철근 배근 간격이 정상수준보다 최대 50~60%가량 적다고 발표했다. 다행히 주민들이 입주하기 전에 부실 문제가 밝혀져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만약에 부실시공 사실을 모르고 입주를 했다면,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세종 아파트도 형사 문제에 대해 적절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다. 다만, 민사는 입주 예정자들이 손해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손해배상제도는 그 적절성에 의문이 있어 관련 제도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보상적 손해배상제도(compensatory damage)는 손해를 끼친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손해액에 대한 배상이라는 법원칙은 환경이나 인권침해 같은 분야에서는 그 실제 손해를 입증하기 어려울 뿐더러 손해배상액 역시 지나치게 소액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반면에 영미법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punitive damage)는 가해자가 고의나 악의를 갖고 행한 불법행위를 응징하고자 실제 손해에 대한 배상 이외에 추가로 징벌적 성격의 손해배상액을 부과하는 제도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관습법에서 인정되는 것과 연방성문법인 독점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손해액 3배 배상제도(rule of treble damage)가 있다.

관습법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주로 적용되는 분야는 개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행위다. 예를 들어 타인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고의적 불법행위, 제조물 책임, 건축물 책임, 의료 과오 등의 불법행위 분야다. 1992년의 맥도날드 사건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표적 사례다. 어느 할머니가 구매한 커피를 엎질러 수술을 요하는 화상을 입었고 이에 대해 법원은 일반 손해금에 추가해 64만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 이후 종이컵에 화상을 방지하는 덧씌우개가 만들어진 걸 보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기업과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 논의돼 오다가 2011년 처음으로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탈취·유용하는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다. 지난해엔 대상행위를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 부당한 단가 인하, 부당한 발주 취소, 부당한 반품 행위로 확대됐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가장 필요한 분야로 여겨지는 안전과 건강 관련 분야에서는 아직 도입되지 않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영미법국가에서 시행되는 제도를 도입하면 대륙법계인 우리나라 법체계와 충돌이 있을 것이라는 점과 이중처벌 문제 등을 지적한다. 대륙법은 민사와 형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우리 법체계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미법국가에서도 대륙법적 체계를 받아들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법체계라는 형식보다도 상대방의 장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안전과 건강 분야에서는 부질없는 논쟁이라 생각한다. 안전과 건강분야에서의 징벌적 배상제도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기업에는 더 많은 활동 기회가 제공될 것이고 악덕 기업을 퇴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따뜻한 의미를 지키려면 법조문의 자구 수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모든 구성원들에게 확실한 신호를 줄 정도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제도가 뒷받침되고 법원 판결이 엄격해져야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될 수 있다.
2014-05-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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