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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반가사유상/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반가사유상/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21-07-19 20:46
업데이트 2021-07-2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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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문화유산을 서열화한다는 지적에 고민하다 지정번호를 폐지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예를 들어 ‘국보 제1호 숭례문’에서 ‘제1호’를 없애 ‘가장 중요한 문화재’라는 오해를 떨치겠다는 것이다. 이미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숭례문’을 검색하면 지정번호 없는 ‘국보 서울 숭례문’과 마주하게 된다.

잘 알려진 대로 일제가 1934년 문화유산을 처음 지정할 당시 ‘보물 제1호’가 ‘경성 남대문’이었다. 광복 이후 ‘보물’을 ‘국보’로 승격시켰을 뿐 일제강점기의 문화유산 지정 체제를 유지했다. 일본은 자기네 문화유산은 국보로 떠받들면서 한반도의 문화유산은 한 단계 낮은 보물로 지정했다.

지정번호 폐지는 바람직한 변화다. 하지만 번호가 사라지면서 뜻밖의 문제점도 나타났으니 같은 이름으로 지정된 다른 문화유산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그렇다. 반가사유상이라면 흔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두 점의 국가대표급 불상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두 반가상에는 최근까지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라는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한 점이 더 있다. ‘국보 제118호’로, 리움 소장 반가사유상이다. 보물로 지정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중앙박물관에 두 점이 더 있다.

문화재청은 “소장처나 지정 연도로 문화유산을 구분할 수 있다”면서 “지정번호 폐지로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리움 사유상은 다른 두 점의 국보 사유상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데다 출토지가 ‘평양 평천리’로 명확하고 지정 날짜도 1964년이라 구분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중앙박물관의 걸작 반가상 두 점은 소장처가 같은 것은 물론 지정 날짜도 1962년 12월 20일로 같다. 반면 제작지는 학자마다 고구려설, 백제설, 신라설로 엇갈리는 게 현실이다.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오른 다리를 왼 무릎 위에 얹은 자세로, 오른손 끝을 뺨에 살짝 대어 깊은 생각에 잠긴 보살의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깨달음을 이루는 과정의 부처가 고뇌하는 장면을 포착한 ‘태자사유상’으로 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야추우지(野中寺) 반가사유상의 대좌에서 ‘미륵어상’(?勒御像)이라는 명문이 발견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어떤 명문도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최근에는 ‘미륵보살’을 빼고 그저 ‘반가사유상’으로 부른다.

문화재청의 지정번호 폐지 작업은 문화유산에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는 단계로의 영역 확장이 불가피하다. 반가사유상뿐만이 아닐 것이다.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 학계의 성과를 반영한 각기 새로운 이름을 기대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sol@seoul.co.kr
2021-07-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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