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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헌트 형제의 은(銀) 투기/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헌트 형제의 은(銀) 투기/전경하 논설위원

전경하 기자
전경하 기자
입력 2021-02-03 17:06
업데이트 2021-02-0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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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업계에서 1980년 3월 27일은 ‘은의 목요일’이라 불린다. 은 선물 가격이 전 거래일보다 50% 이상 떨어져 온스(28g)당 10달러대가 되면서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린 탓이다. 1년 전만 해도 5달러였던 은은 텍사스의 석유재벌인 해롤드슨 헌트의 두 아들 넬슨과 윌리엄 헌트가 현물과 선물을 가리지 않고 사들이면서 그해 1월 50달러까지 치솟았다. 헌트 형제는 은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다시 은을 사들였다. 이들이 사들인 은은 당시 세계 공급량의 절반 수준이었다. 귀금속업체 티파니가 헌트 형제의 은 매집을 비판하는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실었을 정도다.

헌트 형제의 투기는 규제 당국의 제동으로 실패했다. 뉴욕상품거래소(NYMEX)는 개인의 선물 계약 보유한도와 은의 담보 비율을 줄였다. 은값도 내려 선물계약을 위한 증거금이 더 필요했다. 증거금을 제때 내지 못해 선물계약이 반대매매를 당했고 시장은 폭락했다. 헌트 형제는 파산했다.

은은 산업 수요가 많은 금속이다. 이런 까닭에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은 미국 정부가 은화 제조를 중지한 1964년 이후부터 은을 샀다. 버핏의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1998년 연례보고서에서야 1억 270만 온스를 샀다고 밝혔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버핏이 산 은괴는 런던에 보관돼 있다. 런던의 은 현물시장에서는 연간 생산량(10억 온스)의 절반가량이 하루에 거래된다.

은값이 다시 출렁였다. 지난 1일(현지시간) NYMEX에서 3월 인도분이 전 거래일보다 9.3% 급등해 2013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2일은 10.3% 급락했다.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을 공매도한 헤지펀드에 이긴 개인투자자들의 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WSB)에 은을 집중 매수하자는 글이 올라와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은값이 급등하자 거래소를 운영하는 CME그룹은 2일부터 선물 계약 증거금을 18% 올렸다.

게임스톱 사태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공매도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 주가 적정성 여부는 별개다. 게임스톱은 지난해 적자였고 주가는 1월 초 20달러가 안 됐다. 지난 1월 27일 347.51달러로 치솟았지만, 2일에는 전날보다 60% 폭락한 9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금융시장의 ‘골리앗’인 헤지펀드를 ‘다윗’인 개인투자자가 굴복시켰던 것은 대상이 주식이어서 가능했다. WSB에서 은이 언급됐다는 소식에 헌트 형제가 생각났다. 은은 제조업체들이 위험회피 차원에서 선물 계약을 많이 한다. 당국은 시장의 쏠림이 심하다 싶으면 규제를 강화한다. 시장은 열정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보다 더 비싸게 살 ‘더 바보’가 늘 있지도 않다.

lark3@seoul.co.kr
2021-02-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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