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동해안의 산불은 조선시대에도 골칫거리였다. 성종 20년(1489) 2월 24일에는 양양 낙산사 관음전과 간성향교가 불탔다. 관음전은 곧 원통전을 이르니 이때도 낙산사는 전소됐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순조 4년(1804) 3월 3일에는 강원 감사 신헌조가 ‘사나운 바람이 일어나 산불이 크게 번졌는데, 삼척 강릉 양양 간성 고성에서 통천에 이르는 바닷가 여섯 고을에 산불이 번지면서 민가 2600호, 서원 3곳, 사찰 6곳이 불타고 죽은 사람이 61명’이라고 장계를 올렸다. 철종 10년(1859)에도 관동의 양양 통천 간성과 강릉 고성 정선의 산불이 같은 날 일어나 사찰과 초목이 모두 타 버렸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동해안 산불은 대부분 음력 2월 말이나 3월 초에 일어났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초순 언저리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성종 순조 철종 시대 동해안 산불의 양상과 최근 고성 산불 및 양양 산불의 양상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일년 중 묘목을 땅에 심어 뿌리 내리기에 가장 좋은 시기를 택해 기념일을 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불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 또한 이때다.
동해안 산불이 한번 일어나면 대형으로 번지는 이유를 국립기상연구소는 ‘양간지풍’(襄杆之風) 혹은 ‘양강지풍’(襄江之風)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양양과 간성 사이 혹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서 부는 국지적 강풍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서의 차가운 공기층이 태백산맥과 그 상층의 고도가 높을수록 온도가 높아지는 역전층 사이에서 압축되면서 가속이 시작되고, 영동으로 불어 내려가면서 강한 바람을 일으킨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불은 사람의 부주의로 일어난다. 대형 산불 이후 동해안 지역 주민들이 경계심을 크게 높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이제는 다른 지역이 문제다. 지난 주말에는 경기 파주와 강원 철원 영월 홍천 평창, 충북 단양과 제천, 충남 천안과 논산에서 잇따라 산불이 났다. 특히 단양 소백산 산불은 국립공원까지 피해를 줬다. 산림청은 성묘객이 늘어날 4~5일 청명과 한식을 특별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대형산불 특별비상경계령’을 내렸다. ‘양간지풍’이 아니라도 봄철에는 전국 어디나 바람이 강하다. 어떤 종류의 불씨도 산에는 아예 가지고 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6-04-04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