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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방화광(狂)과 분노사회/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방화광(狂)과 분노사회/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4-05-31 00:00
업데이트 2014-05-3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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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확 싸질러 버리고 싶다”는 표현에서는 극도의 복수심이 읽힌다.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상대가 가진 것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상대가 가진 것이 활활 타오르다 폭삭 주저앉는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더욱 방점이 찍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병적 심리가 현대 사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조선왕조실록’만 펼쳐도 수많은 방화(放火)의 사례가 등장한다. 인명 피해가 수반된 방화는 참형이나 교형에 처해진 사례가 적지 않았고, 특히 궁궐의 화재는 실화라 하더라도 극형이 논의되곤 했다. 중국 명나라 기본 법전으로 조선왕조가 준용한 ‘대명률’(大明律)에 그렇게 명시돼 있는 까닭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방화를 저지른 모습이 보인다. 단종 2년(1452)에는 의금부 문서고에 불이 난 사건에 현상(懸賞)하여 범인을 수배했고, 광해군 9년(1617)에는 공조의 담장 3곳에 불을 지른 자에 치죄를 청하기도 했다. 인조 23년(1645)에는 순천부의 별시 무과 초시에 낙방한 사람들이 시험장에 난입해 불을 지르자 죄를 묻겠다며 보고서를 올린 기록도 남아 있다.

특정인에게 원한을 갖거나, 재물을 노린 방화로 사람이 죽거나 다친 사례도 보인다. 그런데 누가 죽어도 좋다는 식의 ‘묻지마 방화’는 적어도 실록에서는 찾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른바 다중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가뜩이나 부정적인 방화의 이미지는 1930년 작가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에서부터 극도의 비정상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밝게 빛나는 불꽃이라는 광염(光焰)을 미쳐 날뛰는 불꽃이라는 광염(狂炎)으로 비틀었으니 작품의 분위기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병리 현상을 자극하는 원인 물질로 불의 존재를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직설적으로 소개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방화를 저지르는 행위를 충동조절장애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어느 사회에도 충동조절장애를 앓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멀게는 대구지하철역과 숭례문 방화, 가까이는 도곡역 방화와 장성 노인요양병원의 방화 의심 사건에서 보듯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은 유독 심각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절차를 거쳐서는 풀 길이 없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진단이 그럴듯하다. 지금이 왕조 시대보다 더한 분노 사회라는 전제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분노 게이지’ 눈금이 치솟아 있는 것은 현실이다. 처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정치적으로 접근한다면 치유는 어려울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4-05-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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