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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터미널 고려장/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터미널 고려장/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4-01-27 00:00
업데이트 201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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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팔레비 왕정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추방된 이후 1988년부터 17년가량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 환승구역에서 살았다. 벨기에로부터 망명 허가를 받았지만 파리를 거쳐 어머니의 나라인 영국을 가려다 신분증을 비롯한 각종 서류를 분실하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는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그곳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6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 환승구역에서도 열 달간 생활한 이란인 자라 카말라가 있었다. 반정부 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된 이후 그녀는 독일을 거쳐 캐나다로 망명하기 위해 두 자녀와 함께 이곳에서 지냈다. 햇빛조차 없는 그곳에서 그들은 공항 직원들이 건네준 음식으로 버텼다고 한다.

이별과 만남의 장소인 공항. 잠시 머무르는 공항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이렇듯 기구한 사연들이 절절하다. 그렇다 해도 공항에 버려진 노인들이 있다는 소식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천국제공항에 지난해 말 입국한 한 외국인이 공항 내 면세구역을 전전하다 정식 입국 절차를 밟은 뒤 대합실 쪽에서 기거한다고 한다. 독일 국적의 이 여성에겐 스위스에 사는 자식들이 있어 공항 측에서 연락했건만 자식들은 외면했다고 한다. 20년 동안 미국에서 살던 63세의 한국 여성도 무슨 사연인지 자식들이 있는데도 공항에서 굶주리고 있다.

인천공항에는 이처럼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더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공항 터미널에서 현대판 고려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고려장은 일제가 한국을 비하하기 위해 꾸민 이야기라고 하지만 늙고 병든 부모를 방치하는 의미에서 본다면 고려장이 분명하다. 복지 선진국 독일의 할머니마저 공항에 유기되는 현실이 비참하기만 하다.

지난해 정신분열증 어머니의 병구완이 어려워지자 길에다 내다버려 결국 사망하게 한 아들이 있었다. 부의금만 챙기고 어머니 시신을 병원에 방치한 채 종적을 감췄다는 세 딸의 이야기도 혀를 차게 했다. 오죽하면 최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조차 ‘한국에서 효도는 옛말’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했겠는가.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노인 고독사와 자살 증가, 치매 등 심각한 노인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는 자식이 부모를 내다 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부모가 집을 못 찾아오도록 멀리 비행기까지 태워 보내는 비정한 자식들. 그래도 부모들은 그런 자식들을 그리워한다니….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4-01-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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