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황수정 수석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23-09-05 02:09
수정 2023-09-05 02:0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못 보던 푸성귀 좌판에서는 덮어 놓고 봉지봉지 담아 온다. 새벽이슬, 밤안개 맞는 텃밭에서 구메구메 날라졌을 풋것들에는 욕심부터 난다. 좀 못생긴 것이 무슨 대수라고. 제 향기를 그대로 뿜는 것들이다.

이맘때는 이맘때의 냄새들이 둥둥 떠다녔다. 마루 끝에 걸터누웠으면 바람에 실린 것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을 감고도 훤했다. 장독 뚜껑마다 나란나란 쪼개져 널린 벌레 먹은 홍고추들, 우북하게 억세진 장독대의 들깨 대궁들, 수런수런 싱겁게 흔들리는 뒤꼍 수숫대. 절정을 지난 푸른 것의 끝물들이 제자리에 몸을 낮춰 체취를 떨치는 시간이다.

늦고추 말라서 칼칼한, 들깨 꼬투리 여문다고 꼬순, 수수알 영그느라 배릿한. 누구든지 “가을이다”라고 말하고야 말던 구월의 냄새. 말로 글로 다 할 수 없는 가을의 향기는 눈만 감아도 한달음에 달려온다. 말하지 못하는 모국어가 입안에서는 더 또렷해지는 것처럼.

때가 되면 그리운 것들은 어째서 늙지도 낡지도 않고 찾아 오시는지.

2023-09-05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