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무대 위의 나/박찬구 논설위원

[길섶에서] 무대 위의 나/박찬구 논설위원

입력 2014-07-12 00:00
업데이트 2014-07-12 00:5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무대에 올랐다. ‘염장이’를 비롯해 1인 15역의 모노극을 하는 배우가 앞줄에 앉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박형사 아니요”라며 손목을 잡아당겼다.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150명 남짓한 관객들의 시선이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훑고 있었다.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나이 지긋한 배우는 능숙했다. 답변을 유도하고 행동을 이끌었다. 처음엔 어눌하고 어색했다. 그러기를 두세 차례, 갑자기 시키지도 않은 감탄사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동작도 배우의 주문 이상으로 커졌다. 관객들은 박장대소했다. 배우도 멀뚱히 쳐다보다가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두 번째 불려나갔을 땐 배우가 염을 한 고인의 큰아들 역할이 주어졌다. 배우의 연출에 따라 차남 역을 맡은 청년 관객과 유산을 둘러싸고 삿대질을 하며 다투었다. 놀랍게도 어느새 나는 ‘즐기고’ 있었다.

공연장을 나서자 한동안 오가는 사람들이 킥킥대며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몸둘 바를 몰라 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기이한 체험이었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나도 모르는 ‘내’가 존재하는 걸까.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2014-07-12 27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