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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이제 박지성을 놓아 주자/오병남 논설실장

[서울광장] 이제 박지성을 놓아 주자/오병남 논설실장

입력 2011-01-15 00:00
업데이트 2011-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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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 하나에 세계가 흥분하고 열광하는 것은 거기에 영웅이 있기 때문이다. 둥근 공 하나에 삶을 건 영웅들의 열망과 몸짓은 우리의 원초적 목마름을 채워 주기에 충분하다. 박지성은 두말없는 한국 축구의 영웅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그는 한국을 사상 첫 원정 16강에 올려 놓았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기적 같은 4강신화를 일궈 냈지만, ‘안방 결실’이라는 이유로 세계축구계의 강호로 대접받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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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남 논설실장
오병남 논설실장
2006년 독일월드컵 첫 경기에서 토고를 2-1로 꺾은 것이 월드컵 출전 52년 만에 거둔 첫 원정승리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그동안 축구변방에 머물러 왔음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남아공월드컵 16강은 한국이 세계축구의 주류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음을 말해 준 쾌거다. 1882년(고종 19년) 영국 군함 플라이호스 병사들을 통해 움튼 한국 축구의 역사를 128년만에 새롭게 쓴 셈이다. 그 중심에 대표팀의 ‘영원한 캡틴(주장)’ 박지성이 있다.

그런 그가 30일 카타르 도하에서 막을 내리는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루과이와의 남아공월드컵 16강전이 끝난 뒤 처음 은퇴를 시사한 이후 그의 거취는 한국 축구계 최대의 화두가 됐다. 걱정과 공감이 교차하고 여론조사 결과도 엇갈린다. 이 가운데 축구대표팀 선수를 대상으로 한 조사가 눈길을 끈다. 대표선수 23명 가운데 무려 17명(74%)이 그의 결심을 존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축구전문가 30명 중 20명(67%)이나 은퇴를 만류해야 한다고 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가 대표팀에서 은퇴하려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간 대표팀의 핵으로 활약해 온 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는 만 33세의 노장이 된다. 그가 뛴다면 물론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한국 축구의 한단계 도약을 이끌 처지는 아니다. 어차피 한국 축구는 브라질월드컵에서 8강 이상에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물에게 ‘영웅의 몫’을 넘겨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어쩌면 당연하다. 프리미어리그의 이청용(볼턴), K리그의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을 비롯한 몇몇 젊은 피가 벌써부터 그의 후계자로 회자된다.

이제는 소속팀에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도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산소탱크’라 불리며 경기 내내 쉼 없이 달리는 그의 플레이 특성상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들이 모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확고한 업적을 쌓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태극마크의 엄중함 탓에 대표팀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오가지만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면 무릎에 물이 차는 고통도 만만치 않다.

그는 올시즌 프리미어리그 진출 6년만에 가장 좋은 6골-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11, 12월의 선수로 연속해 뽑혔다. ‘꿈의 무대’로 불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더구나 18차례나 리그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명문클럽 주전을 당당히 꿰찬 것이다. 그는 이미 단순한 축구선수를 넘어섰다. 한국의 국가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앞으로 그가 자신의 희망대로 맨유의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면, 그는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한국 축구선수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한국에 51년만의 우승컵을 안겨 주는 것이 대표선수로서의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조용한 카리스마로, 안에서는 몸을 던지는 투혼으로 대표팀을 이끄는 그의 활약 덕에 한국은 정상을 향해 진군 중이다.

팬들의 걱정과 아쉬움, 혹시 쏟아질지도 모르는 비난에 대한 부담감이 지금 그를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이제 박지성을 풀어 주자. 그가 세계 축구사의 위대한 영웅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우리의 ‘욕심’을 이쯤에서 멈추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2002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의 명품골을 비롯, 그동안 그가 보여 준 열정과 몸짓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obnbkt@seoul.co.kr
2011-01-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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