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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마취제와 시원한 맥주/문인화가·시인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마취제와 시원한 맥주/문인화가·시인

입력 2021-07-06 17:16
업데이트 2021-07-0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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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 문인화가·시인
김주대 문인화가·시인
“야, 김주대, 너는 똥도 아니야, 못 잊을 거야, 고마워, 사랑해, 나는 죽을 것 같아, 라면 다 가져가, 시원한 맥주 한잔하자,

호호호, 박주대, 엉엉엉엉, 나는 못 살 것 같아, 이제 라면 그만 먹어, 성질이 지랄 같아서 그렇지 박주대는 좋은 사람이야, 김주대, 이주대, 시인이라캤나?

킥킥, 엉엉엉엉, 유서는 어디다 쓰는 거야? 신발은 태우고 옷은 분홍색만 남기고 다 버려,

히히히 김주대가 여자 옷 입은 거 보고 싶어, 한잔하자, 야, 박주대, 술값 꼴값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작고 돈도 없고 집도 없고, 흐이구 저걸 누가 데려가나 걱정이야, 나는 하늘로 갈 거야… 엉엉엉….”

후배가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 본래 말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얼떨결에 보호자가 되어 후배의 수술을 지켜본 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병원에 붙들려 있다.

대화해 주라고 하는데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다. 대충 대답해 본다.

“무슨 소리야, 나 박주대 아니고 김주대야, 넌 안 죽어, 죽는 게 죽 먹는 거 같은 줄 아냐, 절대 안 죽어, 계속 떠들어라, 그래야 깨지.”

대꾸하면 또 정신은 있어서 아주 대화하듯 술술 말을 받는다.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무척 많이 난다.

얼굴을 돌리면 피한다고 화를 낸다.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야? 얼굴 돌리지 말고 말해. 박주대 사랑하고 싶었는데 안 받아주니 내가 간다. 난 이제 죽어. 난 못 살 것 같아, 잘 살아, 라면 먹지 말고, 나물 잘 무치데, 야, 박주대 똥만도 못한 박주대야, 똥도 아니야….

엉엉엉 주대 형, 나 죽는 거 맞지? 엉엉엉엉, 하나도 안 억울해, 마이 살았어….

시원한 맥주 한잔하자 형, 나를 버린 형,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김주대, 술만 마시는 주대.”

같은 병실 환자의 보호자가 실실 웃는다. 무슨 사이냐고 묻는다. 아무 사이도 아니고 그냥 농담으로 주류계의 선후배라고만 말한다.

그사이에 또 후배는 눈을 위로 치뜨면서 중얼거린다. 울다가 웃다가 또 욕을 막 하기도 한다. 나는 또 답을 열심히 한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옆에 아저씨가 막 웃는다, 멍멍아, 할 말 있으면 다 해… 니 말 듣고 있으니 눈물 날라칸다. 그동안 우째 그래 이 지독한 서울에서 살았노?

퇴원하면 고향으로 가, 거기 가서 죽어, 여기서는 안 돼,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지.”

“야아, 김주대, 내 화장품 다 어디 갔어, 입술 바르는 거 줘, 입술이 말라, 무덤에 화장품도 같이 넣어 줘, 알았찌이? 시원한 맥주 한잔할까? 박주대는 술 마시자고 할 때만 만나 주는 인간이야. 여기 배달되려나?”

“퇴원하면 한잔하자. 야, 그카고 너는 애인도 없냐? 이럴 때 좀 부르지, 내가 무슨 죄라고 날 부르고 난리야. 아이고 머리야.”

“애인 다 죽었어. 나보다 먼저 죽었어.

첫째 놈은 술 처먹어 죽고, 둘째 놈은 농약 먹어 죽고,

셋째 놈은 딴 년 만나 죽고, 넷째 놈은 나 때리다 죽고, 다 죽었어.

김주대도 애인할라캤는데 안 받아 줘서 안 죽고.”

이태 전, 술에 취해서 하는 이 후배의 고향 얘기가 하도 슬퍼 그대로 함께 택시를 타고 후배의 고향에 간 적이 있었다.

늙은 어머니가 나를 신랑 될 사람으로 알고 하도 잘해 줘서 참 곤란했다. 그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세상 모든 여성의 한이 깊다.
2021-07-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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