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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경의 문화읽기] 2020년대의 한류

[홍석경의 문화읽기] 2020년대의 한류

입력 2020-01-01 21:50
업데이트 2020-01-0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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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2020년이 왔다. 새해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선에 불과하지만,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나가는 방향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 역할을 해 준다. 특히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 빨리 흐르는 한국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나가는 방향이 최선인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벡터를 주는 것이 한국이 원하는 미래를 향해 더 확실하게 나갈 수 있을지를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해 말 한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를 치렀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향후 케이팝의 연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다루는 국제학회였는데, 주제의 시의성과 흥미로움을 넘어서, 한류와 그 한류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국제학회는 한국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인 한국언론학회 주최였으나, 한 세션을 제외한 모든 발표자가, 외국인 발표자를 포함해서 한국어로 발표했다. 동시통역이 있었으나, 주최자의 요청을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수용해서 발표문을 영어로 쓴 사람까지 한국어로 발표해 주었다.

한국은 대학 간 국제경쟁 때문에 영어로 이루어지는 학술활동을 격려하고 가중치를 두는 정책을 펼쳐 왔고, 그 결과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전 분야에서, 한국에서 진행되는 국제 콘퍼런스를 포함해 가능한 한 모든 경우에서 영어로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것이 규범으로 정착됐다. 이번 케이팝 학회는 적어도 한국에서 개회되는 한류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한국어가 제일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최초의 증거가 됐다.

국제 콘퍼런스의 한국어 전용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이제 한국어로 논문을 쓰고 발표가 가능한 새로운 연구자 세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던 외국 대학의 한국학과 신설과 한국어 수강자 증가가 누적되면서 이들 중 한류를 연구하는 젊은 학도들이 생겨났고, 이들이 급격하게 세계 속 새로운 한류연구자 세대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젊은 한류연구자들은 한국에 많이 있지만, 해외 유수 대학의 동아시아학과들에서도 외국 국적의 연구자들이 한국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한류팬으로서 갖게 된 한국 대중문화와 사회에 대한 열정을 학문적 관심으로 심화시켰고, 이들은 디지털 문화와 함께 탄생한 아카팬에 속한다. 팬의 정체성과 학자의 정체성을 함께 지닌 이 새로운 세대는, 문화에 대한 기존의 무거운 이론들을 재해석하고 때로는 경쾌하게 벗어나는 새로운 시선으로 한류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해낼 것이다. 한국인이 없는 케이팝 그룹이 만들어지고, 넷플릭스가 한국드라마를 제작하는 현재, 더이상 한류의 미래는 한국의 것만이 아니다.

한류는 전지구화된 대중문화 유통과 미디어 환경을 배경으로 동아시아적 문화동력 안에서 태어났다. 이것을 명실상부 글로벌 대중문화로 끌어올리고 있는 방탄소년단과 케이팝은 한국어의 강화된 위상 속에서 새로운 연구자세대가 주체가 되는 2020년대의 한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학의 확장과 리부팅 버전으로 발전하고 있는 한류연구를 볼 때 새로 등장한 이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지원하고 한국이 수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한류의 재료이고 한국학의 일부인 한국 대중문화를 유산화하고, 유산으로서 대접하기가 먼저 필요하다. 이 분야의 산업성을 고려해 이 유산은 자산으로서도 가치를 발휘하도록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한류지원정책의 중심 과제였던 문화산업진흥책과는 구분되는 정책적 마인드를 요구한다. 한국의 역동적인 디지털 문화가 생산하고 있는 여러 대중문화 형식 중 아카이빙 대상을 정하고, 그것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해 이차산물을 생산하고,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융합학문적이고 디지털 인문학적인 기획이다. 이 영상 데이터베이스는 마치 지금 규장각이 한국학의 허브이듯, 세계 한류연구의 허브로서 세계 속 한국의 수월성을 점할 수 있는 정당성의 기초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문화는 공통의 기억이다. 디지털 문화의 쓰나미 속에서 쓸려가고 망각되지 않도록 유산으로서 기억하고 대접할 필요가 있다.
2020-01-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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