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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 설화와 수화/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설화와 수화/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입력 2014-11-10 00:00
업데이트 2014-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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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 발언으로 한동안 정가가 시끄러웠다. 그 발언을 비판하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던 김태호 최고위원은 말을 바꿔 다시 돌아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고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정치연합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각당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말이 참으로 가볍고 경박하다. 때론 다변(多辯)이 천(賤)하고 침묵(沈?)이 귀(貴)한 법인데 말이다. 역경(易經)에는 “혼란이 생기는 것은 말이 그 실마리가 된다”(之所生也 則言語以爲階)라는 구절로 말의 신중함을 경계하고 있다. 논어(語)에도 “사불급설”(駟不及舌·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아무리 빨라도 혀에서 나온 말을 이길 수 없다)이라 하여 말을 한 번 뱉으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으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말을 토해 낼 수 있는 매체들이 많아지다 보니 쓸데없는 말들이 난무한다. 다양한 팟캐스트 방송들도 여과 없이 말들을 생산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확대 재생산되는 소음의 언어들도 판친다. 꼭 해야 할 말들이 아닌 과잉의 언어가 넘쳐난다. 해야 할 말들은 침묵인 채로 남아 있는데, 하지 말아도 될 말들은 달변으로 포장돼 주목받는다. 그러나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이는 드물다. 맹자(孟子)에 “사람이 말을 함부로 쉽게 하는 것은 책임을 추궁받지 않기 때문이다”(人之易其言也 無責耳矣)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그 말을 가벼이 하고 경솔하게 하는 것은 그 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편 TV의 ‘썰전(戰)’이란 프로그램이 거슬린다. ‘썰’로 이겨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니, 마치 말을 전쟁처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독한 혀들의 전쟁’이다 보니 설화(舌禍)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마침 설화로 곤욕을 치렀던 김구라와 강용석이 프로를 맡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때론 눌변(訥辯)이 강할 수도 있다. 공자(孔子)도 눌변이면 인(仁)에 가깝다고 했다. 노자(子)에도 말을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것과 같다(大辯若訥)고 했으니 달변이 능사가 아니다. 중국의 사마천(司馬遷)도 친구를 변호하다 말이 어긋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궁형(宮刑)을 당해야 했다. 바른 일이라고 해도 무리하게 말을 한다면 해를 입게 된다. 말의 신중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래서 군자는 글쟁이(文士)의 붓끝, 칼잡이(武士)의 칼끝, 말쟁이(辯士)의 혀끝을 피함으로써 필화(筆禍), 살화(殺禍), 설화를 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군자피삼단’(君子避三端)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 사회는 네티즌의 손끝에서 야기되는 수화(手禍)까지 덧붙여 ‘군자피사단’(君子避四端)을 논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딱히 매체랄 게 없었던 시대에도 선현들은 말이 부르는 화(禍)에 대해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그런데 방송, 인터넷, SNS 등을 통해 봇물처럼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순식간에 파급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설화와 수화에 얼마나 두려움을 갖고 경계하고 있는가. 침묵보다 나은 말인지, 개인적·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말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되풀이되는 말과 글의 화(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대중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인·연예인들은 주목받기 위해 내뱉었던 무책임한 말들을 거두고 돌아보길 바란다. 그들이 야기하는 설화와 수화에 대해 우리 사회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2014-11-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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