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야마하처럼 하라/최병규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야마하처럼 하라/최병규 체육부장

입력 2014-07-29 00:00
업데이트 2014-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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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콘돔만 빼고 다 만드는 회사가 거기 아니예요?”

오랜만에 마주 앉아 식사를 나누던 후배 A가 밥술을 뜨다 말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랬다. 풍금을 만들어 장사를 시작한 뒤 2014년 현재 세계 피아노 시장의 30%, 전자피아노 시장의 43%, 관악기 시장의 33%를 차지하는 기업, 바로 일본 야마하다.

1970년대 말 보컬그룹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란 노래가 장안을 들썩거릴 무렵, 까까머리 중·고등학생들의 학원가였던 서울 낙원상가 3층에 줄줄이 늘어선 악기 매장을 꽉 채우고 있던 온갖 신기한 것들이 대부분 바로 이 야마하 명찰을 단 악기들이었다.

야마하는 악기 수리공 야마하 도라쿠스가 1888년 일본 텔레비전의 발상지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에서 ‘야마하풍금제조소’를 창업한 뒤 3대째 대를 이어 번성한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 가운데 하나다.

풍금에 이어 피아노, 전자기타, 드럼 등 악기류는 물론이고 앰프 따위의 음향기기에다 반도체와 오토바이, 심지어 골프채와 양궁에 쓰이는 활까지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야마하는 쇠붙이에다 ‘기술’을 주입하는 신기한 ‘야금술’(冶金術)로 우리가 즐기는 대부분의 각종 편의물들을 창조해낸 기업이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모진 참사를 겪고 선장까지 잃은 축구대표팀이 새판을 짜느라 분주하다. 대한축구협회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뒷받침했던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12년 만에 다시 기술위원장에 앉히고 28일 7명의 위원들을 낙점해 새 기술위원회를 꾸렸다. 기술위원회의 가장 큰일은 각급 대표팀 수장을 뽑는 일, 이 가운데 당연히 성인대표팀 감독 선임이 핵심이다.

지금까지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을 둘러싸고 가장 먼저 튀어나온 논쟁거리는 외국인이냐, 아니면 내국인 감독이냐는 것이었다. 특히 히딩크가 월드컵 4강을 남기고 다녀간 뒤 이 논쟁은 새 감독을 필요로 할 때마다 마치 유령처럼 되살아났다. 하지만 브라질 대참사를 겪은 지금 이런 해묵은 논쟁은 휴지통에 버릴 일이다.

지금은 한국의 축구를, 또 대표팀 감독을 바라보는 보다 다양한 시각이 필요한 때다. 야마하가 기업의 거친 바다에서 120년을 생존한 비결은 ‘다각화’에 있었다. ‘다각화는 장수(長壽) 기업의 무덤’이란 일본 업계의 격언을 여지없이 깨고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렇다고 그들이 마구잡이로 한눈을 판 건 아니었다.

“우리가 접한 세계 일류급의 소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첫 번째 일이었다. 그 후에 격에 맞는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 보존하고 또 파생시켜 새 분야에 접목시킨 결과”라고 그들은 말한다.

2002년 이후 우리는 유럽의 빅리그에서 뛸 만큼 부쩍 큰 한국 출신의 세계 스타급 선수들을 거느리고 있다. 박지성이 그랬고, 지금의 손흥민이 또 그렇다. 일류급의 ‘소재’다. 그러나 눈에 쏙 들어오는 대표팀 지도자는 없었다. 관건은 이들의 격에 맞는 조련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보존하며 그 파생 효과를 유소년 어린 선수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는 일이다. 바로 축구협회의 심장인 기술위원회가 해야 할 일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축구대표팀을 지휘할 사령탑 후보로 이미 내·외국인 15명씩을 추렸다고 이날 밝혔다. 이젠 서른 개의 눈이 아니라 수백 가지 시각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평가해야 할 일이다. 한 나라의 축구가 120년쯤은 떵떵거리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cbk91065@seoul.co.kr
2014-07-2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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