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쌀·반도체·핵융합 발전/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쌀·반도체·핵융합 발전/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입력 2010-10-22 00:00
업데이트 2010-10-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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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한반도가 학계의 통설보다 8000년이나 앞서 벼농사를 시작했고,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에 신품종 벼를 보급했다는 최신 글을 읽고 잠시 기분이 우쭐했다.

원로 사회학자 신용하 교수가 지난 8월 15일에 펴낸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라는 단행본을 통해서다. 신 교수는 나름의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해석하면서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이 기원전 1만년에 한강과 금강 유역에서 단립종 벼(자포니카 쌀)를 처음 재배했다고 했다.

이것이 지금 동아시아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쌀이다. 인도에서 처음 재배된 장립종 벼(인디카 쌀)보다 향과 맛이 좋고 찰기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아열대 기후에 더 적합한 벼를 재배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물을 끌여들인 무논 환경을 조성하고 까다로운 생육 조건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이 질 좋은 쌀로 밥과 떡, 과자, 된장, 술 등을 만들었다. 조상들은 안정적인 식량 사정 등을 토대로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던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 고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는 ‘전자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 덕분에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도체는 모든 디지털 기기에 빼놓을 수 없는 부품인 만큼 과연 쌀에 비유될 만하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무역 흑자의 약 47%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35%를 장악했고 이를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근 거액의 투자를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이 함정에는 삼성전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빠질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메모리 반도체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20~25%. 나머지는 한국이 뒤처진 시스템 반도체와 아날로그 반도체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휴대전화의 모뎀칩 등에 쓰이는 일종의 인공지능(AI)이고, 아날로그 반도체는 빛과 소리·압력 등을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첨단 센서. 이런 반도체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다양한 모델에 맞춰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늘 수요가 널뛰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잘 버틸 수 있겠지만 실적이 부풀려진 한국 경제는 자칫하면 무역수지 악화와 금융시장 불안, 국가신용도 추락 등을 부를 수 있다. 우리는 ‘불안정한 쌀’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기원한 밀국수는 동쪽으로 전해져 물 국수 형태로 발전했고, 서쪽 사막을 건너간 마른 국수는 무슬림을 거쳐 9세기쯤 지중해 시칠리아 섬에 상륙했다. 이 마른 국수를 시칠리아인들은 주변에 흔한 듀럼밀로 만들었고, 이것이 스파게티와 마카로니로 이어진다.

우리 쌀과 듀럼밀은 공통적으로 비타민B 덕분에 활발한 신진대사를 도와주고 비만 예방 효능도 지녔다. 그 옛날 우리 쌀이 한강을 벗어나 널리 퍼졌듯 우리의 정보기술(IT)과 일꾼들도 반도체 공장을 벗어나 ‘미래의 쌀’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다행히 정부가 차세대 먹거리 산업 중 하나로 원자력발전을 꼽았다. 원전 수출도 탄력을 받은 듯하다. 원전은 원자핵의 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아울러 원자핵의 융합을 통한 엄청난 에너지는 방사능 문제가 없는, 그야말로 우주시대의 힘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핵융합 초전도 연구장치인 ‘KSTAR’가 중수소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 핵융합 발전은 아직 먼 일이겠지만 어서 한국이 세계 최초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37억년 전 빅뱅 직후 우주에 흔한 수소(H) 원자들이 초고온과 초고압 상태에서 융합 또는 분열을 통해 헬륨(He), 탄소(C), …철(Fe), …코발트(Co), 니켈(Ni), …우라늄(U) 등 무수한 원자들을 만들었다. 미래의 쌀은 가장 먼 과거부터 이미 존재했던 셈이다.

kkwoon@seoul.co.kr
2010-10-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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