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길을 찾는 능력을 되살리자/이애경 작가·작사가

[문화마당] 길을 찾는 능력을 되살리자/이애경 작가·작사가

입력 2014-07-10 00:00
업데이트 2014-07-1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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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경 작사가
이애경 작사가
나는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차는 독립된 공간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고 그곳에서 음악을 듣거나 미뤄뒀던 생각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계에는 약하다. 남들처럼 차에 이런저런 장치들을 설치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유용하게 쓰이는 하이패스도 아직 사용하고 있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몇 달 전에 지인이 나에게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애플리케이션이 있다고 다운받아 사용해 보라고 권유했다. 대부분의 차량용 내비게이션처럼 GPS와 연결돼 가고자 하는 목적지와의 거리, 교통상황, 교통의 흐름을 알려주고 더 빠른 길을 안내해 주는 장치였다. 혹하는 마음에 휴대전화에 다운받아 운전할 때 켜놓고 유용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에 지방에 다녀올 일이 생겼고,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집에 오는데 차가 너무 막혔다.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안내해 주는 대로 운전을 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먼 거리를 돌아가게 경로가 잡혔다. 머리로는 ‘아, 이거 너무 돌아가는데. 그런데 이게 빠르단 말이지?’라고 반신반의하며 그 안내를 따라서 갔다. 옆에서 부모님이 “사람들이 다 내비게이션 켜놓고 빠르다는 쪽으로 가면 차가 몰려서 더 막히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셨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나는 실험을 해봤다.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장치가 안내해 주는 경로가 아닌 내가 아는 경로로 시내에서 운전을 해봤다. 혹은 느낌에 맡기고 덜 막힐 것 같은 길로 방향을 틀어서 운전을 해봤다. 결과는 재미있었다. 기계가 알려준 경로로 갔을 때의 예정 도착 시간과 1~2분 차이로 비슷하거나, 5~6분 조금 늦는 정도였다. 대신 나는 운전하는 중에 길 안내 멘트를 듣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과거에 운전할 때는 목적지가 먼 경우 지도를 펴놓고 길을 미리 머릿속에 그리거나 적어놓고 운전을 했다.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 하며 함께 동승한 사람과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길을 잃으면 차를 세워놓고 길을 묻기도 했다. 지도 없이도 알아서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눈으로 쳐다봤고, 이정표만 보고 먼 길을 혼자서 찾아 도착했을 때 스스로 대견해 하고 뿌듯해 하기도 했다. 운전하는 시간에 낭만과 여유, 자유가 있었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있었다. 하지만 기계에 의존한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가끔은 모두가 가라고 하는, 가야 한다고 여겨지는 그 길로 가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굳이 빨리 가야 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목적지만 확실하다면 돌아가든 질러가든 새로운 길을 탐험하며 가든 길을 가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고 가면 되는 것이다. 우회도로로 돌아가며 낯선 길에 펼쳐진 풍경을 음미해보는 것도 좋고,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가며 시골집 담장, 들에 피어 있는 꽃들을 보는 것도 운치 있다. ‘빨리 빨리’를 실행하며 살아가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길을 찾는 능력이 쇠퇴하는 건 우리들의 삶이 자꾸만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으로 바뀌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혹은 빨리 갈 수 있는 길로 가는 데만 집중하고 애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도로 위의 길이든, 인생의 길이든 말이다.
2014-07-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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