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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 필요하다/이애경 작가·작사가

[문화마당]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 필요하다/이애경 작가·작사가

입력 2014-05-15 00:00
업데이트 2014-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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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던 가수 지망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는 서른 살이 훌쩍 넘어버렸다는 그녀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다. 몇 년 전 진로를 고민하며 상담을 요청해 왔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년간 연예기획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데뷔가 계속해서 미뤄졌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연예기획사에 들어가 서른이 다 될 즈음, 연예인으로서 가장 예쁘게 꽃피울 수 있는 시기를 다 흘려보내고 나왔다.

이애경 작사가
이애경 작사가
데뷔 앨범을 내고 잠시 활동을 했지만 인기를 얻지 못해 조용히 지내다가 몇 년 뒤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 이도 있다. 몇 년간 방황하던 그는 마음을 잡고 현재 입시·취미 학원에서 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때의 상처는 아리기만 하다.

연예인 지망생 100만명 시대. 대중이 TV에서 볼 수 있는 스타들은 연예인을 꿈꾸는 100만명의 아이들 중 살아남은 0.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다. 화려해 보이는 데다가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주어지는 듯한 모습은 분명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되지 못한 채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99.9%의 남은 아이들이 있다는 이면은 보지 못한다.

아이들이 ‘꿈’을 꾸는 데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은 없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대통령을 꿈꾸고, 과학자를 꿈꾸고 외교관을 꿈꾼다. 꿈을 꾸고 오롯이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꿈을 꾼 자의 몫이다. 내가 과학자가 되지 못했다고 세상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꿈을 꾸는 데 어른들의 책임이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연예인 꿈이 그렇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TV에 잠시라도 얼굴이 비춰졌던 아이들, 길거리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은 아이들, 연습생이 된 아이들, 또 동영상 반짝 스타로 떠올랐던 아이들. 자신들의 꿈이 일장춘몽이 아니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받기 시작한 그때부터는 그 아이들의 미래에는 어른들의 책임이 따른다.

물론 자본주의 논리에서 연예인을 상품으로 비유하자면 경쟁력 있는 상품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 팔리지 않는 물건 생산을 중단한다고 공장이 비난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예인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격을 가진, 또 우리와 마음을 맞대고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이기도 하다.

연예인을 꿈꾸다 날개가 꺾여버린 수많은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소위 ‘화류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마음이 무너진다.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면, 어른들은 그들의 인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현실감 있게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줘야 한다. 연예인에서 자동차 딜러, 학원 강사로 전향해 성공한 이들도 있다. 특기를 직업이 아닌 취미로 삼고 살아도 충분히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그들을 상품이 아니라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 그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다.

어른들에게 안내자로서의 책임의식이 있다면 세월호 사고도 이렇게 비극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책임을 다했지만 어른들 중 길을 알려주고 내어줘야 할 자기 책임을 다한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2014-05-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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