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봉 사회2부 부장급
이런 회사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사고 발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실 꽃다운 생명을 무더기로 앗아간 주범은 구조 당국(정부)이다. 분초를 다투는 사고 초기에 윗선에 상황을 보고하고 대책본부를 꾸리느라 허둥댔다. 가장 아쉽고도 안타까운 점은 헬기운용 문제다. 기동력이 뛰어나다고 뽐내던 장비는 무용지물이었다. 헬기가 처음 도착한 것은 지난달 16일 오전 9시 27분. 이때부터 세월호가 완전 침몰한 10시 20분까지 50여분은 ‘골든타임’이었다.
앞서 진도 항만관제센터(VTS)의 항로추적 실패와 오전 8시 52분 “살려달라”는 단원고 학생의 첫 신고 때 우왕좌왕하느라 허비한 시간을 만회할 마지막 기회였다.
현실은 너무 달랐다. 공중에서 밧줄을 타고 처음 내려온 사람은 항공구조사였다. 이들은 배 밖 승객들을 한 사람씩 바스켓에 담아 올려 보냈다. 대여섯명이 탄 소형선박 전복 때나 적용할 수 있는 구조 방식이다. 당시 세월호는 왼쪽으로 40~45도 기우는 중이었다. 이때 장비를 갖춘 ‘특수구조대원’들이 내려와 선실을 장악했더라면 상황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조타실에 바로 진입, 탈출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다. 줄사다리 등으로 선실 바닥에서 아우성치는 승객들을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잠수장비를 갖추고 들어가 탈출로를 확보할 시간도 어느 정도 있었다. 이 같은 50분간의 골든 타임은 생사를 가름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당시엔 해경 123호 경비정도 현장에 도착했다. 주변엔 어선 20여척이 몰려들었다. 배 밖으로 나와 있던 승객들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다.
해경 특수구조대는 이미 ‘상황 끝’이던 오전 11시 24분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이 한 일이라곤 물 밖에 겨우 드러난 선수에 부표를 다는 게 전부였다. 한 해경 간부는 “ 큰 배가 그렇게 빨리 가라앉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상황 판단의 미숙함을 가늠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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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8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