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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리더의 자격/이은주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리더의 자격/이은주 문화부 기자

입력 2014-05-03 00:00
업데이트 2014-05-0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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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부 기자
이은주 문화부 기자
학창 시절 반장을 맡을 기회가 많았다. 아침 조회 시간마다 운동장 맨 앞에 서서 학우들의 줄을 맞추던 기억, 수업이 시작될 때 주변 친구들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 조건반사적으로 자리에서 튀어 올라 ‘차렷, 경례’를 외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기억은 두 가지다. 자습 시간이면 교실 분위기를 다잡으려고 선생님 대신 교단에 오를 때마다 잠시나마 맛봤던 대리 권력(?)의 달콤함과 학급 전체의 잘못을 대표해 책임져야 한다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출석부 모서리로 맞았던 씁쓸한 기억이다. 그때 나는 리더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지를 깊이 깨달았다.

사회에 나와 수많은 리더들을 만났다. 업체의 대표부터 공공기관의 기관장까지. 그들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리더의 무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였다. 혹시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무거운 책임감은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잊을 만하면 사회 지도층의 비리와 성추문 사건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도 리더의 자격을 되묻게 한다. 생사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승객들에게 대피 지시도 내리지 않고 혼자 탈출한 비양심적인 선장, 잘못된 방송을 곧이곧대로 믿고 구조를 애타게 기다렸던 순진한 학생들, 급박한 상황에서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우왕좌왕하는 관계 당국.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장들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배가 뒤집히는 위기 속에서 홀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없는 상황에서 오롯이 개인에게 그 책임이 전가됐다. 세월호에 탄 승객들의 희생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장 먼저 개혁돼야 하는 대상은 각계 각층의 리더들이다. 리더는 수백명의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자리다. 국민의 생명을 놓고도 개인의 안위를 먼저 지키려 전전긍긍하는, 이름마저 험악한 ‘관피아’, ‘해피아’, ‘모피아’ 등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되는 이유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역린’에는 정조가 생명의 위협속에서 스스로를 다잡고 나라를 세우는 기초로 중용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대목이 나온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이기심과 권위의식이 아니라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다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와 리더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erin@seoul.co.kr
2014-05-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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