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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외양간은 누가 고칠까?/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외양간은 누가 고칠까?/김재원 KBS 아나운서

입력 2014-05-01 00:00
업데이트 2014-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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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
먹먹한 가슴이 나아질 줄 모른다. 대한민국의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물먹은 솜처럼 처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타자 비판에 앞장서 왔다. 직업윤리를 무시한 승무원들을 비난하고, 안전 불감증 기업을 비판했다. 생명을 경시하는 것 같은 정부의 부실한 재난구조시스템에 가슴을 쳤다. 사고로 살이 찢어져 봉합하려고 봤더니 온몸에 악성 세포가 퍼진 꼴이다.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 이제 타자 비판보다는 사회적 자아성찰에 무게를 두는 상황이 됐다.

총체적 부실 속에 사고의 교훈이 금세 잊힐까 봐 겁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여러 번의 인재 사고를 통해 그렇게 많은 소를 잃고도 왜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을까? 얼마 전 항공기 안전사고나 2년 전 이탈리아 여객선 사고를 보고도 왜 반면교사를 삼지 않았을까?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만 이번 일은 나라 전체의 후회로 가슴속 상처가 차라리 아물지 않기를 바란다. 큰 흉터로 남아 오래도록 후손에게 보여주며 사회적 교훈을 가슴에 새기기를 소망한다.

캐나다 유학 시절 가족들과 저렴하게 유람선을 탈 기회가 있었다. 유람선에 타자마자 대피훈련을 했다. 승객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으로 올라가는 훈련이 한 시간 넘게 진행됐다. 외국인에게는 승무원이 일일이 만나 사이렌이 울리면 구명조끼를 입고 무조건 갑판으로 올라오라고 재차 확인했다. 수천명의 승객이 모두 줄을 맞춰 갑판에 모였다. 여행의 설렘에 들떴던 나는 훈련이 길어지자 슬슬 짜증이 났다. 이번 사고를 보고 내 모습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캐나다 초등학교를 다닌 아들은 매 학기 한나절씩 지진대피 훈련을 했다. 지진 한 번 없었던 도시지만 서부해안의 특수성을 염두에 둔 훈련은 비상용 대피주머니까지 준비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영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원에 잠깐 다녔던 아이는 첫 주에 화재 대피훈련부터 했다. 영어를 이해 못 하는 아이들에게 몸으로 대피를 체험하는 훈련부터 실시한 것이다. 부모로서 귀한 수업시간 축난다고 삐죽거렸던 기억이 있다. 이번 사고를 보고 어찌나 부끄럽던지.

어쩌면 당연했던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괜한 데 시간 투자한다고 짜증냈던 것이 나를 비롯한 우리의 현실이다. 비행기에서 비상탈출 방법을 설명하는 승무원들을 애써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일삼고, 늦은 밤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운전하기 일쑤였다.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확인하라는 소방 비상구는 관심 밖이었다. 가끔 승용차 인원초과 탑승을 묵과하기도 했다. 이런 우리에게 극장, 공연장, 체육관, 종교시설 등은 어쩌면 시한폭탄인지도 모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위기 때마다 위로의 글로 사용하는 서양 고사이다. 물론 가족의 고통은 지나가야겠지만 사회적 경고는 오래 남기 바란다. 유약한 부모 밑에서 똑똑한 자식 난다고, 부실한 정부 밑에서 국민들이 먼저 정신 바짝 차리자. 이제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잊지 말자. 사우나의 냉탕온도도 20도이다. 얼마나 추웠을까? 4월 16일을 안전의 날로 제정해 뼛속 깊이 새기자. 내가 바로 지금 외양간을 고치자. 더 이상 소를 잃을 수는 없다. 단원고 학생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어른 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미처 몰랐다.
2014-05-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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