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레슬링의 퇴출/임태순 논설위원

[씨줄날줄] 레슬링의 퇴출/임태순 논설위원

입력 2013-02-14 00:00
업데이트 2013-02-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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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 그중에서도 남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빨리 달리는 것과 강한 힘이었을 것이다. 민첩함과 완력이 없으면 사냥에서 노획물은커녕 도리어 맹수에게 잡아먹혀 도태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원전 776년 열린 첫 고대 올림픽에서 달리기가 유일하게 경기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인들은 길이 215m, 너비 30m의 스타디온 경기장에서 191.27m(600피트)를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로 우열을 가렸다. 오늘날 육상 경기장을 뜻하는 스타디움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힘을 측정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68년이 지난 18회 대회(기원전 708년)로, 이때 비로소 레슬링과 5종경기(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등)가 추가됐다. 복싱이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훨씬 뒤인 23회 대회였으니 레슬링이 격투기 종목의 원조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의 대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70~399)도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몸짱’이자 ‘얼짱’이었으니, 레슬링의 지위가 얼마나 독보적이었는지를 엿보게 한다.

이러한 전통으로 인해 레슬링은 1896년 그리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에서 육상, 수영, 체조, 역도 등 9개 종목과 함께 근대 스포츠 종목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레슬링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자유형에서 첫 금메달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후 메달 전략종목으로 육성돼 모두 11개의 금메달을 딴 ‘효자종목’이다. 인간의 원초적 힘을 보여주는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퇴출된다고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엊그제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회의에서 2020년 하계 올림픽에서 레슬링을 핵심종목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로선 퇴출 종목으로 거론됐던 태권도가 살아남아 다행이지만 올림픽 터줏대감이자 메달박스였던 레슬링을 보지 못하게 돼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레슬링이 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빠지게 된 것은 실력 평준화로 선수들이 소극적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제레슬링협회(FILA)는 세트제를 도입, 승패가 뒤바뀔 여지를 더 크게 하고 경기를 속도감 있게 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상업주의에 물든 IOC 위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올림픽 종목 채택 여부는 해당 종목 경기인에겐 사활이 걸린 일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제외되면 선수 이탈과 시장 축소 등 치명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올림픽 경기종목도 시대상황에 따라 변해야 한다. 태권도도 이번에 살아남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부단하게 변신해야 할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13-02-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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