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숙 사회부 기자
지난 1월 31일.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그 자리에서 법정구속됐다. 재계는 숨을 죽였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징역 4년 6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징역 4년)에 이어 1년 새 3명의 재벌 총수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법부가 달라지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재벌 비리=집행유예’라는 공식이 나돌았다. 각종 범법행위로 재판에 넘겨진 재벌 총수들은 국가 경제 기여도 등을 이유로 어김없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마저도 채 1년이 안 돼 사면되곤 했다. 사법부는 사회 정의의 실현이 아닌, 재벌 비리의 최후 보루로 작용해 왔다.
사법부의 변화에는 지난해 총선을 전후해 부상한 ‘경제민주화’ 담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횡령·배임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지속적으로 보완했고, 최근 잇단 판결로 더 이상 ‘솜방망이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재계로서는 법원에 불어닥친 경제민주화 바람이 반가울 리 없다. “법원이 시류에 편승하고 있다”, “재벌 죽이기는 경제 침체로 이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죄를 짓고 그 대가를 두려워하기 전에, ‘준법 경영’을 하면 될 일이다. 다만 사법부도 중심을 잡아야 한다. 변화의 움직임은 좋지만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해 세파에 좌우돼선 안 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이번 기회에 사법부가 ‘의식적인 재벌 잡기’가 아닌,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초석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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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6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