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窓] ‘공갈젖꼭지’의 불편한 진실/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생명의 窓] ‘공갈젖꼭지’의 불편한 진실/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입력 2012-06-30 00:00
업데이트 2012-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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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 부부가 식당 한 귀퉁이에 앉는다. 이내 아기가 운다. 반사적으로 아기 엄마가 공갈젖꼭지를 찾아 입에 물린다. 언제 울었느냐는 듯,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친다. 주변에서 보는 익숙한 풍경이다. 나도 한때 그걸 물었을 것이다. 아무리 빨아도 젖이 나올 리 없건만, 빨고 빨고 또 빨면 언젠가는 나오겠지,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서 빨았을 것이다. 그렇게 빨다가 제 풀에 지쳐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이빨이 나와서 더 이상 예전처럼 빨았다가는 젖꼭지가 찢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하기까지 진실로 온 힘을 다해 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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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보통은 ‘빠는’ 욕구가 강해지기 시작하는 생후 3개월 무렵부터 아기가 제 손가락을 너무 많이 빨아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할 요량으로 공갈젖꼭지를 물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들의, 혹은 육아책의 이런 설명에 동의하기 어렵다. 진실을 말하자면, 언어라는 수단 외에는 의사소통 방법이 없는 엄마가 말 못 하는 아기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나온 궁여지책이 아닐까.

아기의 욕구란 것이 대개는 생리현상에 집중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먹고’ ‘싸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 욕구가 다 채워졌음에도, 여전히 아기가 울면 엄마는 돌연 벽에 부딪힌다. 예방 접종도 꼬박꼬박 챙겼고, 어디 특별히 아픈 구석도 없어 보이는데, 뭐 때문에 우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 궁지에서 엄마를 구원하기 위해 나온 발명품이 바로 공갈젖꼭지라고 나는 믿는다. 요컨대 공갈젖꼭지는 아기의 필요보다는 엄마의 필요에 봉사한다.

공갈젖꼭지를 입에 물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기는 불만의 원인이 제거되었을까. 전혀 그럴 리 없다. 단지 망각되었을 뿐이다. 이 망각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공갈젖꼭지에서 젖이 나오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과 일치할 터. 하여, 공갈젖꼭지를 입 밖으로 밀어냄과 동시에 터져나오는 두 번째 울음은 첫 번째 울음보다 더 서럽고 절망적이다. 하지만 첫 번째 울음의 의미조차 몰랐던 엄마가 그보다 훨씬 중의적인 두 번째 울음의 의미를 해독하기는 만무. 공갈젖꼭지가 떨어져서 우는 줄로만 알고, 다시 그것을 주워 아기 입에 넣어주며 달래기에 성공했다고 자인한다. 그런 식으로 아기는 공갈젖꼭지에 길들여지면서 자신의 본래 욕구와 차츰 멀어지게 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공갈빵’을 씹으며 잠시 공갈젖꼭지의 추억에 젖는다. 아무리 먹어도 결코 배가 부르지 않는, 크기만 엄청나지 속은 텅 빈 공갈빵은, 그 정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범죄적 배반감을 안겨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렁주렁 타이틀만 요란해지는 나 자신이 문득 공갈빵을 닮은 것 같아 부끄럽다. 덩치가 커질수록 그 안에 생명과 진리를 품기 어려운 종교 역시도 공갈빵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통과의례처럼 저마다 공갈젖꼭지를 물고 자라는 동안, 우리는 모두 자신의 참된 욕구를 모르거나 혹여 안다 해도 무시하도록 길러진 게 아닌가 싶다. 나 자신만 해도 이 나이를 먹도록 도대체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기가 가장 어렵기에 하는 소리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모델이 걸친 옷이 하도 예뻐 보이기에 코디한 그대로 주문을 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똑같은 옷인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인터넷 화면에 떠 있던 이미지와 어째 그리도 다르냐는 말이다. 이런 일을 자주 겪으면 포기도 빨라져서 얼른 다른 상품으로 욕구 이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변덕을 부리다가 문득 깨닫게 되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이 실상은 자기기만이었구나.

예수 가라사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다. 눈이 성해야 몸이 밝지, 눈이 성하지 못하면 몸도 어두운 법이란다. 눈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먹고 싶고, 입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욕구가 다 눈에서 비롯된다. 그 눈이 성하려면 마음부터 챙겨야 하리라. 거짓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참된 필요를 추구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2012-06-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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