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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유감/신동일 중앙대 영문과 교수

[시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유감/신동일 중앙대 영문과 교수

입력 2012-05-01 00:00
업데이트 2012-05-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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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과 영어 말하기에 관한 사교육 열풍이 심상치 않다. 외고 입시 변화로 한풀 꺾인 ‘시장 수요’는 NEAT를 통해 판세가 역전되었고 많은 학부모들은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기만 하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선 공교육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강조하지만, 수년 전 토플 대란이 일어났을 때 2년 만에 토플 수준의 국제적인 시험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 교과부를 쉽사리 믿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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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일 중앙대 영문과 교수
신동일 중앙대 영문과 교수
단순히 시험에서 끝날 일이 아니란 걸 학부모들은 알고 있다. 내 아이가 지필 시험에서 50점 맞는 것과 영어로 한마디도 못하고 바보처럼 앉아 있는 것과는 걱정의 차원이 다르다. 말하기 교육을 위한 공적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이니 부모는 학원교육에 의지하게 된다. 이러한 때에 NEAT의 의사결정력을 높인다면 이미 시작된 사교육 대란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교육기업이 욕심을 줄였다면 국가가 시험판에 개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품화시킬 수 있는 모든 공학적 매체를 동원하여 언어와 교육의 성취단위를 잘게 쪼개고, 측정하고, 관리하고, 좀 더 잘해야 한다고 다그칠 때 효율성은 높아지고 수익은 더욱 확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변했으니 알아서 몸집을 줄이고, 시간당 효율성은 떨어지더라도 사회적 가치, 언어적 생태성, 협력공동체, 혹은 분리된 지식보다는 통합적 사고를 고민하겠다는 사교육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NEAT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국가 주도의 교육과정, 교과서, 일제시험, 교사 선발 등에 우린 매우 잘 길들여져 있지만 과연 5년 뒤, 10년 뒤도 영어를 배우고 시험 치르는 일을 국가가 주도하는 틀 안에서 반복하고 있을까? 만약 국가가 만든 시험이 시원치 않으면 어찌할 건가? 애국주의에 호소할 것인가? 만약 그것이 통한다면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된 세계화, 자유무역, 다문화, 글로벌 기업은 또 뭔가? 무엇보다도 국가가 개입해서 새로운 일을 할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지금까지 보상받아 온 일과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니 한동안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안 할 거면 대안은 뭔가. 최선의 실천은 권한위임형, 민주주의 기반의 교육문화운동밖에 없다. 누구든지 서로 맞서서 이긴 쪽으로 권한을 이양만 하면 새로운 지배질서만 만들어질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든 시간을 두고 서로 배우고 협력하면서 권한의 위임망을 확장하면서 국가와 시장의 이항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들이 하고 있고,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해서야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배울 수 없다. 엄한 영어선생님이 가르치는 교실에선 즉흥적이고 의미협상적인 구술언어를 배울 수 없듯이, 큰 시험 몇 개를 전 국민이 끙끙대며 준비하는 문화에서는 언어와 교육을 통한 다양성을 익힐 수 없다.

민주적 시험문화를 감당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꼭 필요하다. 우선 큰 시험의 힘을 더 빼야 한다. 수능 시험 때 기독인들이 교회에 모여 온종일 기도하게끔 하면 안 된다. 얼마나 초조한 시험이면 시험 끝날 때까지 기도하는가? 한 번의 시험에 힘을 실어주고 그것만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시험 전통에 계속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또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목적에 맞게 꼭 필요한 작은 시험을 자치적으로 만들어 보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비용과 시간이 요구되지만, 민주적 실천은 효율성과 비용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다. 이 일에 좀 더 헌신할 수 있는 정직한 전문가, 시민단체의 참여가 절실하다.

새로운 시험문화를 만들자고 하면 행정적으로 당장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거나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기득권은 싫을 것이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이 사회적 가치로서의 교육, 언어의 공공성, 학습을 통한 공생의 사회를 꿈꾸자고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 시장과 국가의 단순한 구호에 편승해서는 사교육 대란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2012-05-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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