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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값 등록금’의 선행 조건/서남수 홍익대 초빙교수·전 교육부 차관

[시론] ‘반값 등록금’의 선행 조건/서남수 홍익대 초빙교수·전 교육부 차관

입력 2011-07-01 00:00
업데이트 2011-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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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권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너무 비싼 대학 등록금은 심각한 민생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들이 뒤엉켜 생겨난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우리 고등교육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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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수 홍익대 초빙교수·전 교육부 차관
서남수 홍익대 초빙교수·전 교육부 차관
그런데 해법이 영 마땅치 않다. 정작 핵심이 되어야 할 방대한 소요 재원 확보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지원하는 것이 좋은지 도무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장학금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직접 지원하자니 자칫하면 그러지 않아도 과잉인 대학 진학을 부추기고 부실대학을 지원하는 결과가 될 수 있고,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해 간접적으로 등록금을 낮추자니 국민 세금으로 방만한 대학 재정 운영만 조장하는 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을 고민하다 보면 바로 우리 대학교육의 질 관리와 평가 체제가 매우 부실하고,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부실대학도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으면 ‘시장 원리’에 의해 저절로 퇴출당할 것으로 기대했을 뿐이지, 정작 퇴출되어야 할 부실대학의 기준이 무엇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정부가 부실대학의 일차적 기준으로 삼는 학생 지원율이나 취업률도 그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보다는 평판에 의한 서열과 소재지에 의해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학생 지원자가 충분하고 취업률이 비교적 높은 수도권 대학이라고 해서 모두 질 높은 대학인 것도 아니다.

선진 외국들은 대부분 엄정한 대학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재정을 지원하기 때문에 국민 세금이 낭비될 여지가 거의 없고, 또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기제로도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도 대학교육협의회나 교육과학기술부에 의한 대학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동업자 조합’에 의해 평가인증해 주는 형식적 평가이거나 몇 개의 양적 지표에 주로 의존해 일과성으로 평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학평가 체제라고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재정 지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의 획기적 확대와 그를 통한 학생과 학부모의 등록금 부담 완화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기에 영합하는 일시적인 등록금 부담 경감에 그쳐서는 안 되고, 엄정한 대학평가를 통해 부실대학을 퇴출하고 우리 고등교육 체제와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정책 구상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서 고등교육평가원 설립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 평가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여야가 합의하지 못해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바 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 법안을 새롭게 다듬어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 대학평가 체제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대학들도 합리적인 대학평가 제도의 도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대학재정 구조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학으로 나아가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선진국형의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는 필수적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엄정한 대학평가 시스템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매년 수조원의 방대한 국민 세금이 제대로 된 평가도 거치지 않고 대학에 투입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치권 역시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꿰거나 우물 앞에서 숭늉을 찾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수백억원이면 가능한 대학평가 체제를 먼저 서둘러 구축하고 대학재정을 연차적으로 그리고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청사진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경감시키면서 동시에 우리 대학들을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그래서 국민 세금을 정말 값지게 쓰는 길이다.
2011-07-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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