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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談餘談] 마냐나(Mañana) /김민희 경제부 기자

[女談餘談] 마냐나(Mañana) /김민희 경제부 기자

입력 2011-01-01 00:00
업데이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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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이맘때 나보다 1년 먼저 서른 살을 맞은 J언니가 이렇게 말할 때, 이건 분명 ‘오버’라고 생각했었다. “잔치가 끝난 수준이 아니야. 이제 내 인생은 끝났어.” 정말? 내가 무슨 커트 코베인도 아니고, 서른이 되면 인생이 끝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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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체육부 기자
김민희 체육부 기자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12시간 뒤에 서른 살이 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J언니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인생의 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처럼, 비행기 두 대가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에 부딪칠 때처럼,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비장한 느낌이 요 며칠 동안 이어졌다.

 처음엔 부정도 해봤다. 이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짊어지는 부당한 강박관념의 산물이라고. 젊음, 특히 여성의 젊음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와 집착은 얼마나 허무하고 천박한 것인가. 하지만 나는 분명 사회적 강박관념과 상관 없이 조급해하고 있었다. 서른 살이 상징하는 ‘어른’의 표상, 그게 내게는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딱 떨어지는 수트를 입고 치열하게 일하다가 저녁이 되면 교외의 단독주택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이건 순전히 내 판타지이니 제쳐두고라도 지금의 나는 책임감·관용·인내 등등 어른이 의당 가져야 할 법한 미덕은 하나도 없이 그저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 나이 먹도록 뭘 했냐.’는 질문에 나는 답을 할 수 없어 슬펐다.

 그러다 얼마 전, 책을 읽다 발견한 단어 하나가 강물처럼 넘쳐 흐르는 평화를 선사했다. ‘마냐나’(Mañana)라는 스페인어. 사전적으로는 ‘내일’이지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라는 스페인 특유의 슬로 문화를 반영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걸 보고 결심했다. 내일 나는 서른 살이 되지만 마흔, 쉰, 예순, 일흔의 내가 아직 남아 있다. 열 살을 더 먹을 때마다 이뤄놓은 게 없다고 아등바등하는 삶은 얼마나 비극인가. 인생은 나 자신에게만 충만한 의미가 있으면 된 거 아닐까. 나는 서른 살의 1월 1일부터, 매일을 즐기고 느끼고 감탄하고 아파할 거다. 마냐나, 마냐나.

경제부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2011-01-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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