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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블랙 위도즈/함혜리 논설위원

[씨줄날줄]블랙 위도즈/함혜리 논설위원

입력 2010-04-01 00:00
업데이트 2010-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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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르를 쓴 두 명의 소녀가 소파에 앉아 있다. 이들의 나이는 17세. 체첸반군이 촬영했다는 이 영상물의 장면은 이어 트럭 안으로 바뀐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두 소녀 사이에는 폭탄 기폭장치가 보인다. 폭탄이 가득 실린 트럭을 타고 두 소녀가 향한 곳은 러시아군 검문소. 2000년 6월9일 러시아 언론은 러시아 병사 7명이 희생된 이 사건을 가미카제식 자살폭탄 테러라고 보도했다.

2001년 남편을 잃은 체첸 여성이 자신의 남편을 죽인 러시아 군 장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블랙 위도( 검은 과부)’의 등장이다. 북카프카스 지역의 분리주의 세력은 그녀처럼 러시아 군의 손에 가족을 잃은 여성들의 분노를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들, 남동생이나 오빠 등 가족들이 분리주의 운동을 벌이다 러시아 정부군의 손에 목숨을 잃은 많은 여성들이 테러에 가담했다. 이들은 카프카스의 산속에서 훈련하며 폭탄 조립과 은폐, 폭발 방법을 훈련받고 테러에 투입됐다. 러시아에 대한 분노와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블랙 위도즈는 2000년대 초 러시아 곳곳에서 벌어진 테러 공격을 주도했다. 지난 2002년 10월 모스크바 두브로브카 극장 인질극에는 검은색 차도르를 쓰고 몸에는 폭탄띠를 두른 채 기관총을 든 블랙 위도 19명이 참여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젊은 여성들이 테러에 적극 가담하는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다. 체첸의 여성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책 ‘알라의 신부들’을 쓴 언론인 율리아 유지크에 따르면 이들은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치밀하게 진행하는 심리조작의 희생자들이다. 가족을 잃은 경우도 많지만 최근에는 순수하게 종교적인 이유에서 테러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을 잃은 체첸 여성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그들을 극단주의로 내몬다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도 남성들에 비해 의심을 덜 받기 때문에 분리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젊은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측면이 강하다.

2004년 8월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 이후 뜸하던 체첸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블랙 위도즈도 활동을 재개했다. 39명의 사망자를 낸 최근 모스크바 지하철역 연쇄 폭탄테러가 그 증거다.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머리와 신체 일부는 두 여성이 전형적인 카프카스인의 외모를 갖고 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나이는 고작 18~20세. 검은 상복을 입기엔 너무 젊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보복의 역사는 언제나 끝날 것인가.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10-04-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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