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칙 지키는 교육이 우리 아이 살린다/유형근 한국교원대 교육학과 교수

[시론] 원칙 지키는 교육이 우리 아이 살린다/유형근 한국교원대 교육학과 교수

입력 2010-02-05 00:00
업데이트 2010-02-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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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대학능력시험(SAT) 문제지 유출 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유명 어학원 강사가 태국에서 시험지를 빼돌려 시차를 이용해 미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유포하는가 하면, 또 다른 강남 어학원 강사는 국내에서 문제지를 유출하다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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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근 한국교원대 교육학과 교수
유형근 한국교원대 교육학과 교수
왜 이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을까. 원인은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원칙과 규칙을 경시하는 풍토에 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널렸다. 자녀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른 아이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교사에게 촌지를 건네고, 학교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만 있다면 점수를 허위 조작하거나 부풀려 보고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태들이 가정·학교·사회에 만연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규칙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고 반칙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또 이런 환경에서는 규칙과 원칙을 어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음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나 도덕적인 감각은 무뎌지게 된다. 이쯤 되면 규칙이 무시된 권투경기에서 두 선수가 모두 반칙패를 당하게 되는 경우와 같이 어느 누구도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공멸의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개인적으로 갈망하던 목표달성에 실패하거나, 성공하더라도 효율성이 떨어지게 되며, 종국에는 국가적인 망신을 초래해 국격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 미국 뉴욕시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통해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1994년 미국 뉴욕 시장으로 선출된 루돌프 줄리아니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하면 대개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와의 전쟁을 기대했으나 그는 의외로 낙서·교통질서 위반 등의 경범죄 근절부터 나섰다.

줄리아니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강력범죄가 아닌 경범죄부터 근절하는 정책을 펴는 데 토대가 된 이론이 바로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이 이론은 깨진 유리창처럼 사소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가볍게 보고 방치해 두면, 나중에는 더 큰 범죄나 사회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한 줄리아니 시장의 정책효과는 아주 놀라웠다. 낙서와 교통질서 등의 경범죄를 단속하여 기초질서와 원칙을 지키는 환경을 만들자 직접적인 전쟁의 대상이 아니었던 살인범죄 등의 강력범죄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칙과 규칙을 무시하는 사례들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일례를 들면, 부모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자녀들에게 파란불에 건너야 안전하고 교통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그런 부모가 급하다며 빨간 색 신호등에서 도로로 뛰어들고, 그것도 모자라 건너지 않으려는 아이의 손을 억지로 끌고 무단횡단을 하며, 이 바람에 놀란 운전자들이 급정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런 행동은 단기적으로는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어서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 아이는 원칙만 적당히 무시하면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무단횡단과 같은 반규범적, 탈법적 행위를 죄책감 없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결국, 부모의 사소한 규칙위반과 편법이 아이를 파멸시키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생활주변의 작은 것부터, 나부터’ 원칙을 지켜야 한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좀 쉽고 빠르다 하여 반칙과 편법을 쓰기보다 좀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인식과 행동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전제가 충족되었을 때라야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원칙 불감증의 참담한 결과인 제2, 제3의 SAT 문제유출 사건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2010-02-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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