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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던 남자의 담뱃불이 7세 아들 얼굴에”

“앞서가던 남자의 담뱃불이 7세 아들 얼굴에”

입력 2017-05-14 10:38
업데이트 2017-05-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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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흡연 피해 심각” vs “흡연권 보장돼야”

“여기를 지나갈 때에는 숨을 꼭 참고 지나갑니다. 야외인데도 이곳만 지나가면 담배 냄새로 찌든 PC방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불쾌해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진동 D타워 앞에서 만난 윤모(38)씨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날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주변 인도에는 20∼30명의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3~5명씩 무리를 지은 남성 흡연자들이 저마다 일회용 커피잔을 하나씩 들고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곳을 지나가던 사람 중에서는 연기를 맡기 싫은 듯 코를 막거나, 아예 ‘흡연족’을 피해 인도 대신 차도로 걸어가는 무리도 눈에 띄었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길거리나 광장, 공원 등 실외 금연구역 시설은 1만7천여 개다. 실내 금연구역은 서울 시내에만 24만 개에 이른다.

또 금연구역 정책 확대에 따라 실외 금연구역 지정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되고,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하는 경우에도 과태료를 물게 된다.

하지만 정작 보행 중 흡연에 대해서는 사실상 별다른 단속 규정이 없다.

그러다 보니 금연구역이 아닌 야외 도로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단속을 피해 아예 걸어가면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또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기자가 찾은 오피스 건물이 몰려있는 청진동 일대 역시 D타워 주변처럼 길거리 흡연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한 흡연자는 기자가 말을 걸자 “근처에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거리를 피해 비(非)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것도 잘못이냐”며 강하게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고층 건물 관리인은 “건물 주변에 ‘금연’이라고 안내판을 붙였는데도 점심시간이면 골목길 전체가 ‘너구리 소굴’이 된다”며 “건물 근처에서 몰려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내가 가서 쫓아낼 수 있지만, 담배를 물고 지나가는 사람까지는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보행흡연 피해를 직접 겪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7살짜리 아들이 있는 주부 권모(33·서울 서대문구) 씨는 최근 아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앞에서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던 중년 남성이 손에 쥐고 있던 담뱃불이 바로 뒤에 있던 아들의 볼에 닿으면서 아들이 “앗, 뜨거!”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놀란 권 씨가 남성에게 “길을 가면서 담배를 피우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이 남성은 사과는커녕 “애를 잘 간수해야지 왜 위험하게 바로 뒤에서 걷게 놔두느냐”고 오히려 권 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중랑구 신내동에 사는 주부 이모(35)씨도 “딸이 7살인데 흡연하는 사람들이 담배를 쥐고 있는 손의 높이가 딸의 키와 비슷하다”며 “보행 중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한소리 하고 싶지만 대부분 걸어가며 피우는 사람들이 남성들이어서 강하게 항의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던 여성이 길거리에서 흡연한 남성을 말리다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흡연자들은 일본처럼 흡연구역 확대 등을 통해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흡연자들에게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원 김모(49)씨는 “일할 때마다 담배를 피우며 한숨 돌리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회사 건물 전체가 금연인 데다 별도의 흡연구역도 없어 출근길이나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보행흡연’을 하게 된다”며 “나라에서 담뱃세도 많이 가져가면서, 그 돈으로 흡연구역을 늘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다른 회사원 전모(32)씨는 “지금은 흡연구역이나 금연구역 어느 쪽도 아닌 일반 도로의 경우, 흡연자는 ‘흡연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비흡연자는 ‘왜 여기서까지 담배를 피우나’라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므로 갈등이 불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씨는 “정부가 흡연구역이 아닌 모든 곳은 ‘금연구역’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도록 해야 하고 이런 전제하에 흡연구역을 적절히 늘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행흡연을 못 하게 하려면 실외 공간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야 하는데 세계적으로도 그런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지금처럼 실외 금연구역을 점차 확대해나가는 방식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웃 일본에서는 2001년 도쿄(東京) 중심가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던 남성의 담배 불똥이 뒤에서 걷던 어린아이의 눈에 닿아 실명한 사건 이후 대부분 지자체에서 길거리 흡연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길거리 흡연을 하다 적발되면 지역에 따라 2천엔(약 2만원)에서 2만엔(약 2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커피숍 등 상당수 실내 공간에서 여전히 흡연이 가능한 일본 사례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장수 주무관은 “일본은 여전히 적잖은 실내 공간에서 흡연을 허용하고 있어 대부분의 실내 공간에서 금연이 원칙인 우리와 차이가 있다”면서도 “실외에 흡연구역을 많이 설치하는 일본의 사례를 우리가 참고할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이나 규제만으로 간접흡연 피해를 예방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에티켓 캠페인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쪽으로 시민의식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암센터 부속병원 암예방검진센터 전문의인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은 “실외 공간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모든 것을 다 법으로 규제하기는 어렵고 선진국 시민으로서의 교양과 시민의식을 높이는 쪽으로 에티켓 운동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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