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위기에 빠진 재계] <3>사면초가의 대기업

[총체적 위기에 빠진 재계] <3>사면초가의 대기업

입력 2013-10-05 00:00
업데이트 2013-10-0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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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47개 대기업 세무조사 법정형 받은 총수도 수두룩

재계 한 인사는 4일 “글로벌 기업들은 파트너 선정이 엄격하다”고 잘라 말했다. 거래하고 있는 대기업 총수의 형사 처벌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거나 파트너십 해제를 요구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해외 신인도 하락은 해외 비즈니스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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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총수 형사 처벌 소식은 신뢰 부분 점수에 영향을 미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해외 수주전에서 한국 기업들이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 경쟁사들은 앞다투어 한국 기업들의 총수 형사 처벌 소식을 고객사에 흘리고 있다. ‘한국 기업은 믿을 수 없는 기업’이라는 소문을 퍼트려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다.

그동안 기술력과 가격 등에서 한국 기업에 밀렸던 해외 경쟁사들이 이번 기회에 한국 기업에 대한 흠집 내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총수가 구속됐거나 사법 처리 위기에 내몰린 대기업들은 해외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글로벌 기업과의 컨소시엄 구성 등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뛰어야 할 대기업이 움츠러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은 포스코, 롯데, 효성, 코오롱 등 47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SK 최태원, 한화 김승연, 태광 이호진, CJ 이재현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은 실형을 받았다.

이와 관련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총수 구속 등 기업에 대한 압박이 투자의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에 투자가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설비투자의 성장 기여도’는 올 1분기 0.2% 포인트에서 2분기 0% 포인트로 떨어졌다. 성장률은 1분기 0.8%에서 2분기 1.1%로 상승했지만 투자가 2분기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투자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들이 나서지 않으면 중견·중소기업들도 투자를 주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투자 실종 등 악성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총수가 구속된 SK는 신사업 추진이 전면 중단됐다. 회장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사업이나 신성장 동력 사업 발굴은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다. 많게는 조 단위의 자금이 투입되는 대형 투자 사업을 오너가 도장을 찍지 않고 월급쟁이 전문 경영인이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SK E&C가 알짜 매물인 STX에너지의 인수를 포기한 것이라든가 최 회장이 공을 들인 정보통신산업(ICT)과 에너지 사업의 태국 진출이 포기된 것이 이런 정황을 설명해 주고 있다.

SK 관계자는 “일상적인 경영 누수 방지에 주력할 뿐”이라고 했다. 이라크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한화의 사례도 유명하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 수주를 계기로 2차 신도시 등 대규모 사업의 추가 수주를 낙관했다가 최근 경쟁국 기업들에 모두 내주게 생겼다.

김 회장을 대신해 부회장들이 이라크 현지로 날아갔으나 돌아온 대답은 “노(NO)”였다.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한화 현지 법인장은 “김 회장의 공백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전했다.

CJ도 마찬가지다. CJ제일제당은 ‘라이신 글로벌 1위’ 생산력 확보를 위해 진행하던 중국 업체 인수 협상을 끝내 중단하고 말았다.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효성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석래 회장의 검찰 소환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룹의 정상적인 영업 활동은 멈춰섰다. 이달 말까지 베트남 투자 등 내년도 사업 계획을 짜야 하지만 총수가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그룹이 혼돈에 빠졌다.

이러다가는 투자는 물론 고용도 실종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투자, 고용을 해 달라던 정부가 기업을 위축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불만이다. 청와대 얘기와 정부 부처나 규제기관의 말이 다르니 한 가지 리스크만 있는 게 아니라 두 가지 리스크가 있는 게 요즘 상황이라고 말한다.

예전 정부와 가까웠던 기업에 대한 ‘보복 수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현 정권도 4년 후엔 전 정권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오너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가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2013-10-0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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