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헛발질로 분쟁 키웠다” 지적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상속분 갈등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의 ‘헛발질’이 오히려 분쟁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삼성생명 차명주식의 소유권을 매듭지으려고 했던 시도가 오히려 소송을 야기한 데 이어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미행 의혹도 사실로 밝혀질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악수(惡手)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백억원을 들여 사회공헌사업을 하며 그룹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온 노력이 한 방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건희 회장측이 촉발한 면이 강하다.
이맹희 전 회장측의 소장에 따르면 작년 6월께 이건희 회장측이 ‘상속재산분할 관련 소명’이라는 문서를 보냈다.
’선대회장(이병철 창업주)의 상속재산이 모든 상속인에게 분할됐고 모든 상속인은 각자 받은 재산이외에 다른 상속인의 재산에 대해 어떤 권리나 이의가 있을 수 없으며 더더욱 특정 상속인이 차명재산을 국세청에 신고한 후 실명전환하는 시점에서 다른 상속인들이 자신의 상속지분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맹회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현 CJ회장의 개인재산을 관리하는 상무가 이 문서에 서명해 서울지방국세청에 제출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이맹희 회장측은 이 문서에서 언급한 차명재산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서명날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러자 일주일 뒤에 다시 이건희 회장측은 ‘차명재산에 대한 공동상속인들의 권리 존부’라는 문서를 보내 삼성생명 차명주식은 이건희 회장에게 적법하게 상속재산분할된 것이며 그렇지 않다고 가정하더라도 유류분반환청구권의 시효소멸이나 시효취득으로 인해 이건희가 그 소유권을 취득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즉 이맹희 회장측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삼성생명 차명주식은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 됐으니 딴소리하지 말라는 일방적인 선언이었다.
두 건의 문서는 이맹희 회장측이 법률적 검토를 거쳐 소송을 제기하게 된 계기가 됐다.
결국 확실하게 매듭지으려고 했던 성급한 시도가 형제간 법정다툼을 초래한 결과이다.
23일 제기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삼성그룹 직원의 미행 의혹도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기름에 불을 붙는 꼴이 될 전망이다.
양측의 갈등이 표면화된 상황에서 그룹 소속 직원이 갈등 상대방인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은 그룹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을 내 놓지 않고 있다. 다만 삼성물산은 “미행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삼성물산은 문제가 된 직원이 감사팀의 김모 차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호텔신라 부지 활용방안의 사업성 검토를 위한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접촉사고건은 이미 해결됐다”며 “CJ측이 고소하면 경찰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이번 해프닝은 과거 CCTV사건도 연상시키고 있다.
CJ그룹(당시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으로부터의 분리가 진행중이던 1995년 서울 장충동 이재현 회장의 이웃집 옥상에 삼성그룹이 CCTV를 설치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이재현 회장측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삼성측이 CCTV를 철거했다.
이는 양 그룹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작년 6월에는 삼성이 삼성SDS를 앞세워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가해 CJ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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