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최악사태 면했지만… 특혜 논란 등 여진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처음으로 주요임원의 횡령 배임 혐의로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렸던 한화가 간신히 살아났다. 한국거래소가 5일 긴급회의를 열어 한화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한화그룹의 신뢰도 추락은 물론 대기업 특혜 논란, 지연공시에 대한 책임 문제 등에서 비켜갈 수 없을 듯하다.●지난해 4월 거래소 규정 변경
한화그룹의 지주회사인 한화가 상장폐지 직전까지 간 것은 지난해 4월 변경된 유가증권시장상장규정 때문이다. 거래소는 배임 또는 횡령 금액이 자기자본 대비 5% 이상, 대기업은 2.5% 이상인 경우에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쳤다. 이전까지는 임직원의 배임 또는 횡령 금액이 자본의 전액을 잠식하는 경우에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었다.
대기업으로는 한화가 변경된 규정이 적용된 첫 사례였다. 지난 1년간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서 횡령 및 배임 금액이 커서 상장폐지 직전까지 갔다가 온 기업은 보해양조와 마니커가 있다. 보해양조는 두 달여 주식거래가 정지됐고, 마니커는 2주 만에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란 결정이 내려졌다. 반면에 코스닥업체는 지난해 횡령·배임으로 13곳이나 상장 폐지됐다.
보통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인지를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주 이상인 데 비해 한화는 주말 사흘 동안 ‘초스피드’로 결정됐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에 대해 거래소 조재두 유가증권시장본부장은 “투자자 보호와 시장충격 최소화를 위해 신속하게 진행했다. 한화 측 자료에 개선 의지가 담겼다고 판단했다. 특혜는 일절 없다.”고 설명했다.
거래소 측의 사상 초유의 빠른 결정으로 한화는 거래 중단과 상장폐지 실질심사라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으나 대기업에 특혜를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유효하다. 지난 1년간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 심사 대상까지 올랐다가 거래정지 없이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는 한화가 처음이다.
늑장공시도 문제였다. 검찰은 지난해 1월 30일 김승연 한화그룹회장을 배임·횡령 등으로 불구소 기소했고 한화는 지난해 2월 10일 공소장을 받았다. 그러나 1년이나 늦은 지난 3일 저녁에야 이에 대한 공시를 했다. 지난해 4월부터 배임·횡령에 관한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을 법원의 확정 판결에서 검찰의 기소로 확대한 점에 비춰보면 늑장 공시가 결과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킨 셈이다.
●보해양조 두 달간 거래 정지 ‘대조’
거래소도 주말에 신입사원 극기훈련을 떠날 정도로 한화가 금요일 오후에 기습 공시를 할 줄은 몰랐다. 한화 측은 실무책임자의 업무착오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사태가 커지기 전에 한화에 조회공시를 요구할 책임을 진 거래소 역시 직무유기를 했다는 시각도 있다.
6일부터 정상거래되는 한화의 주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한화는 그룹 주력사인 데다 배임·횡령에 따른 자기자본 희석효과로 단기적으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2-02-0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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