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골프 신인왕 이정은 “레슨 코치가 목표였는데…”

여자골프 신인왕 이정은 “레슨 코치가 목표였는데…”

입력 2016-12-06 09:34
업데이트 2016-12-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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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못 쓰는 아빠에 효도하려면 좋은 성적 내야”…“내년엔 상금10위 겨냥”

“세미프로 자격 따서 레슨 코치하면 먹고는 살 것 같아서 시작한 골프였는데…”

포즈 취한 이정은 프로
포즈 취한 이정은 프로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신인왕을 차지한 이정은(20)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신인왕을 차지한 이정은(20)은 중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웬만한 프로 선수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골프채를 손에 잡는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3년 동안 골프를 배운 적이 있던 게 계기였다.

이렇게 골프 입문이 늦은 건 “공부로는 꿈도 목표도 생기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골프를 배워 세미 프로 자격이라도 따면 레슨 코치를 해도 먹고는 산다고 하길래 시작했다”고 이정은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이정은은 올해 이소영(19)과 치열한 경쟁 끝에 신인왕을 따냈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이소영은 당시부터 라이벌이었다.

이정은은 이소영이 7월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신인왕을 굳혔다는 시점부터 신인왕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시즌 초반에는 사실 신인왕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소영이가 우승하면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확 들었다. 저만치 앞서가는 소영이를 따라잡는 게 힘들기는 하겠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정은은 시즌 막판 2개 대회를 남기고 신인왕 포인트에서 이소영을 따라잡았다. 남은 2개 대회에서 이소영의 추격을 뿌리치고 신인왕을 확정했다.

이정은은 “국가대표 평가전 4번 모두 이소영을 앞섰다. 소영이가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소영과 라이벌 의식이 신인왕을 차지한 원동력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세미 프로 자격이나 따자’는 소박한 목표로, 한참 늦게 시작한 골프였기에 이정은의 골프 인생은 시작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고향 전남 순천의 연습장에서 훈련한 이정은은 중고 연맹전 대회에 나가면 예선 통과가 급선무였다.

특기생으로 진학할 성적 자체가 없어 고향 순천 청암고에는 보통 학생으로 다녔다.

“수업도 다 들었다. 프로 선수가 되어서 정상급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아니었기에 피나는 연습을 했던 것도 아니라서 골프와 학업을 병행하는 게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고교 때 수련회나 수학여행도 다 다녔다. 나만큼 학교에 추억이 많은 프로 선수도 없다”

하지만 숨은 재능은 빠르게 드러났다.

고교 2학년 때 출전한 전국 대회 베어크리크 배에서 덜컥 우승하면서 엘리트 선수로 거듭났다.

“당시 국가대표 선수가 다 나온 대회였다. 거기서 우승하니까 ‘아 나도 국가대표 이길 실력이 되는구나. 나도 국가대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국가대표 상비군이 된 이정은은 이듬해 호심배 우승을 차지했다. 호심배는 아마추어 엘리트 선수들이 모두 우승을 탐내는 메이저급 대회다. 호심배 우승으로 이정은은 국가대표가 됐다.

한국체대에 특기생으로 진학한 이정은은 지난해 7월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올랐다.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하느라 또래 선수들보다 프로 전향이 2년 이상 늦어질 뻔 했지만, 이정은은 또 한 번 초고속으로 달렸다.

유니버시아드가 끝난 다음 주 KLPGA 준회원 테스트에 합격했고 2주 뒤 출전한 KLPGA 3부투어에서 프로 첫 우승을 일궜다. 이 우승 덕에 KLPGA 정회원 신분을 얻었고 시드전에 나서 올해 KLPGA투어에 뛸 자격을 따냈다. 유니버시아드 이후 불과 4개월만에 프로 전향, 준회원 자격 획득, 프로 대회 첫 우승, 정회원 입회, 시드전 합격이라는 성과를 냈다.

“유니버시아드에 나가느라 프로 전향이 늦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국가대표를 하면서 외국 대회도 많이 나갈 수 있었고 배운 게 정말 많다. 아마추어 국가대표를 일찍 반납하고 프로에 왔다면 지금만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이정은은 유니버시아드 2관왕과 신인왕은 자신감을 느끼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뭔가 목표를 세우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정은은 내년 목표를 박인비 인비테이셔널 대회 자력 출전이라고 밝혔다. 박인비 인비테이셔널은 KLPGA 선수와 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 대항전이다.

“이 목표에는 모든 게 다 들어있다”는 이정은은 “우선 거기에 출전하려면 상금랭킹 10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상금랭킹 10위 이내에 들려면 우승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목표는 “박인비 인비테이셔널에 나가서 이겨보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올해 박인비 인비테이셔널에 초청 선수로 나갔는데 두번 모두 졌다. 팀 매치는 처음이라 너무 긴장했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년에는 자력으로 나가고 꼭 이기겠다”

하지만 이정은이 ‘상금 10위 이내’를 내년 목표로 삼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버지께 넓고 편한 집을 사드리고 싶다.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싶다. 상금 10위 안에 들면 집을 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이정은의 아버지 이정호(52) 씨는 다리를 쓰지 못한다. 이정은이 4살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 씨는 불편한 몸으로 딸을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했다.

휠체어를 탄 채 딸의 경기를 모두 따라 다니며 응원한다. 이정은이 타고 다니는 카니발 승용차는 장애인용 운전 장치를 갖췄다. 부친 이 씨가 운전하기 때문이다.

“골프가 쉬고 싶고 그만두고 싶을 때 아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런 아버지에 효도를 해야 하지 않겠나. 골프에 집중하고 성적을 내야 하는 게 효도라 생각한다”

이정은은 당분간 해외 진출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외 진출은 한국에서 상금왕 해보고 나서 생각할 일이다. 지금까지 미국 가서 잘하는 선배들도 다 국내 무대 평정하고 가지 않았느냐. 나도 그런 경로를 밟으려 한다. 차근차근 밟아나가야겠다”

한국에서 상금왕은 3년 뒤라면 가능해질 것 같다고 이정은은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내년부터는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올해는 신인왕에 염두에 두느라 포인트 쌓는 것에 집중하느라 컷 탈락을 피하는 데 집중했다. 내년에는 컷 탈락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회 때마다 우승을 노리는 과감한 경기를 펼치겠다. 원래 그런 스타일인데 올해는 이걸 억눌렀다. 본색을 드러내야겠다. 하하”

이정은의 골프는 씩씩하고 템포가 빠르다.

플레이가 시원시원하다.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드라이버나 아이언이 기복이 없는 게 장점이다. 크게 타수를 잃는 일이 좀체 없다. 퍼팅이 따라 주면 버디를 하루에 예닐곱 개씩 뽑아내는 폭발력도 있다.

다만 아직도 쇼트게임이나 퍼팅이 모자란다. 그는 “이번 겨울에 샷을 가다듬는 건 물론이고 쇼트게임과 퍼팅을 집중적으로 연마할 생각”이라고 동계훈련 구상을 밝혔다.

롤모델을 물었더니 “딱히 한 명을 꼬집어 말할 순 없다”면서 “박성현 선배의 드라이버, 고진영 선배의 멘탈, 이승현 선배의 스윙 리듬과 퍼팅을 따라 하고 싶다”고 답했다.

“올해 나와 같이 데뷔한 김지영 언니의 아이언샷과 조정민 선배의 쇼트게임도 부럽다”고 덧붙였다.

이정은은 아직 인생의 목표는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목표를 이루기도 바쁜데 그런 먼 훗날 목표를 정하겠느냐”는 이정은은 “하나 있다면 스물아홉 살 때쯤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깔깔 웃었다.

“성격이 좀 남성적이라서 상냥한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이정은은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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